2017년 1월 20일 금요일

무제

http://ungzx.blog.me/220915544225
트친일지도 모를 분의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리뷰.

이 리뷰가 해당 출판사의 사장인 나의 기억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01시에 일어나 3번째 책 번역을 조금 하다가, 아내와 같이 눈을 맞으며 편의점을 갔다. 돌아와서 다시 번역을 조금 하고, 07시에 은행 사이트에 접속해 출판업 등록면허세를 냈다.
우리 출판사는 어느덧 5년차에 접어들었다.

우리 출판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이 문장이 굉장히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나온 책은 달랑 2권인데, 5년차라니...
2013년 2월에 처음 출판사 등록을 하고 시작했으니, 다음 달이면 만으로도 4년을 꽉 채우게 된다.

우리 출판사의 이름은 워크라이프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에서 따와서 그렇다. 구글 블로그의 이름이 워크 라이프 덕덕인 것도 그 영향이다. 야근이 지겨워서 월급쟁이 때려치운 사람이라 좀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대안적인 삶에 대한 책을 출간하려 노력했다.
국내에 이미 나와 있는 책들을 뒤져서 읽고, 일본 책, 미국 책들도 찾아다니며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갈구했다.

1년 이상을 집중적으로 찾아다녔으나 내가 내린 결론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없다"였다. 사회와 시스템이 정시 퇴근을 지원해줘야 가능한 일이고, 한국식 눈치 문화, 알아서 기어야 하는 문화에서 개인이 워크 라이프 밸런스를 실현하려면 굉장히 지난하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물론 각 개인이 저녁이 있는 삶을 실현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노하우를 도식화해서 책으로 만들고, 독자가 그걸 매뉴얼 북처럼 따라하면서 자신의 삶도 바꿀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자신(출판업자인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기만일 것이다. 사회가 바뀌기 전에는...

이런 말을 하는 나는 1970년대 후반에 태어난 남자다. 또래 압력이라는 거대한 눈치를 최대한 무시하며 살았다. 중고생 때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차라리 피는게 몸이 편하다는 군대 담배도 2년 2개월 동안 배우지 않았다. 직장인 시절에는 상사의 술도 거절했다. 야근은 내가 필요할 때만 했고, 상사가 먼저 퇴근을 하던 말던, 내 스케줄대로 움직였다.
그 결과가 30대 중반 창업이다.

나는 보편타당한 워크 라이프 밸런스 실천법을 찾아다녔고, 결국 포기했다. 회사를 떠나 자신만의 회사를 세워라, 같은 건 해결법이 될 수 없다.


그 후 다른 테마를 물색했고, 밸런스가 아니라 라이프에 초점을 맞췄다.
워크란 고된 것이고, 그걸 개인이 개선할 여지가 적다면 최대한 라이프에서라도 즐겁자!
그래서 취미로 분야를 좁히고, 내가 즐거워하는 분야인 덕 콘텐츠를 출판하기로 결정했다.
리뷰어가 뜬금없다고 느낀 지점은 이 부분일 것이다. 커뮤니티 활동도 없던 인간이 갑자기 나타나 DEEP한 책을 내고 있으니 이상해 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지금은 폐업한 '불새 출판사'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냥 사장이 좋아서 하는 거라거나, 시장성과는 동떨어진 방향을 지향한다거나...

일마존에서 덕덕한 책 100여권을 사다가 읽고, 읽고, 읽으며 준비했다. 우리가 찾던 콘텐츠의 기준은 딱 하나였다.
"30대가 읽기에도 유치하지 않을 것"
이론 공부도 충분히 했고, 사회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리도 파악한 이 나이대의 사람들이 완독 후 "유익한 시간이었다"라고 느낄 만한 그런 콘텐츠를 찾아다녔다.

운명처럼 첫 책을 발견했지만, 일본 측에서 KICK 당하고, 2번 타자로 내려고 점 찍었던 드래곤볼을 서둘러 첫 책으로 출간하게 된다.
번역자를 찾다가 결국 성에 안 차서 직접 번역자로 나서게 된 과정, 1년 반 동안의 번역, 첫 책의 두려움, 그리고 인터넷에서의 괴랄한 소동... 그 모든 걸 뒤로 하고 2번째 책이자 애초에 3번 타자였던 세카이계를 서둘러 준비해서 내놓았다.

이 두 책의 공통점이라면 기존의 통념, 대한민국에서 통하던 상식에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출간 전, 아재인 나는 모르는 현재의 드래곤볼의 위상이 궁금해 조사해보니 제일 많이 나오는게 '손오공 인성 쓰레기'론이었다. 과거의 명작이기에 젊은 세대는 새로 정주행을 하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가 장난으로 퍼트린 썰을 정설인양 믿고 있었다. 세카이계도 마찬가지였다. 마마마만 거론될 뿐, 정작 이 용어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은 없었다.
출간 후, 우려대로 "드래곤볼 따위를 왜 깊이 읽어? 종이 낭비" "세카이계? 언제적 구닥다리 오와콘" 같은 반응과 직면하게 된다. 가치를 인정해주고 애정해 주는 독자들도 있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드볼 _____ UNDER, 세카 _____ UNDER다.(수치는 추후에 삭제했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이렇다.
출판업 등록면허세를 송금하고, 지난 2016년 동안의 손익을 따져보고, 2013년부터 2016년까지의 비용을 따져보았다. 형제에게도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금액이 나왔고, 시장 반응을 보기 위해 습관화된 검색질을 하다 위의 따끈따끈한 리뷰를 보게 되었다.

시장과 환경의 '조짐'과 '조건'을 따졌다면 우리 책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공개한 _____과 _____이라는 수치에만 주목하는 출판사에서도 앞으로 이 분야의 책을 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브컬처를 진지하게 평하는 책"을 계속 낼 예정이다. 우리의 백리스트에는 최소한 3권이 스톡되어 있다. 문제는 그 후다.
지금처럼 팔린다면 "서브컬처를 진지하게 평하는, 30대가 읽기에도 유치하지 않은 책" 시리즈는 5권에서 끝날지도 모르고, 우리는 다시 괜찮은 서브컬처 비평을 접하기 힘든 암흑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정초부터 대형 도매상이 부도를 내는 등 출판계가 힘들다.
함량 미달의 책을 억지로 사달라는 호소가 아니다. 이런 책이 있음을 한번 알아봐주시길 권하고, 정보를 수집하다 구미를 당기는 포인트가 있다면 주저만 하지말고 지갑을 열어서 힘을 보태달라는 요청이다.
우리가 설령 망한다고 해도, 절판본은 비싸게 거래된다고 하니, 구매자에게도 손해는 아닐 거라는 질 낮은 농담을 던지며 이만 마치려 한다.


창업 당시에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서브컬처 분야에 집중해서 책을 내보고 싶은데, 아마 망할 거야. 그동안 직장 다니며 모은 돈, 그거 다 털어먹고 끝나겠지 아마. 그런데도 시작해도 될까?
아내: 해.
왜?
아내: 하고 싶은 거잖아. 그럼 해야지.

처음부터 낭떠러지라 예상하고 걸어온 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도와주신다면 제 앞에 있는 안개 뒤에 튼튼한 다리가 놓일 수도, 100미터 뒤에 낭떠러지 표지판이 1000000000km 뒤에 낭떠러지 표지로 바뀔 수도 있겠지요.

책은 여기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http://aladin.kr/p/NbAWy

드래곤볼 깊이 읽기.
http://aladin.kr/p/5njF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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