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7일 금요일

원스 어폰 어 타임 in 킹오파 (4회)

유 존슨? 나 최영희야. 그러고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 - 96 무한 잡기

킹오파 96이 어떤 게임이었는지, 예전에 즐기셨던 분은 기억을 더듬는데 도움 되시라고 영상 몇 개 가져왔습니다.

고수로 검색해서 나오는 것들과 알고리즘으로 뜨는 영상들을 꽤 봤는데, 96이 워낙 입력이 빡빡한 게임이라, 어이없는 순간에 콤보가 끊기거나 서로 1대만 때리고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순간들이 좀 보이더군요. 97, 98은 그렇게 외계인처럼 하는 중국인들이 96만 딱히 못할 이유는 없잖아요? 96이 입력이 좀 그렇습니다.

무한설풍 OK가 되면 게임이 얼마나 허망하게 끝나는가의 예시.

기스가 어퍼를 쓰는데 96 때 어퍼 금지 같은 건 없었습니다.
금지와 허용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길게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무한설풍만 없고 지뢰진 버그 추가타와 가드 유지, 다단히트는 OK인 배틀.


가드 유지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 커맨드잡기에 잡히지 않는 특성을 활용하여 커잡 캐릭터를 바보로 만드는 기술인데, 96 당시에는 존재를 몰랐던 걸로 기억합니다. (RMS는 알았는데 제 머리에만 없는 건지.) 

무하마드 알리의 가드 유지(마지막의 댄스까지 봐야 찐)

당시에는 무한 잡기(실제로 무한 아님)라는 선입력 잡기가 화두였지요.
"유 존슨? 나 최영희야. 그러고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
커맨드 한 번만 입력하면 화면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걸어가는 동안 범위 안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잡힌다. 이런 이미지로 게시판을 통해 퍼졌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무위키 선입력 킹오파96 부분 설명에 있듯이, 몇 프레임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과 96의 커맨드잡기에 실패 모션이 없어서(98에 생김) 생기는 오해인데, 실제로는 물 위에 떠있는 백조의 발처럼 계속 입력을 해야 합니다.
뭐 내밀거나 움찔하기만 하면 잡기 범위 안에 들어오는 순간 무조건 잡히는 무한 잡기라는 식으로 퍼져서 지방의 배틀인들이 많이 물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R.M.S. 류명상군이 찾아냈습니다.
이걸 금지니 어쩌니 할 때 문제는, 뒤로 두바퀴 계열의 고로 초필 잡기 같은 경우. 선입력과 버튼 유지로 계속 빨빨거리며 입력을 하면서 뒤로 갈 때(방어가 자동으로 됨), 그 범위 안으로 조심성 없이 발을 들일 때 훅 딸려 올라가는 경우. 이게 선입력인지, 보고 잡은 건지 판정할 수 있냐는 거지요. 잡지 글에 애매하게 써 있는데, 양심에 맞기는 수밖에...

다단히트는 모든 캐릭터, 모든 기본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R.M.S. 류명상군이 찾아냈습니다.
이 테크닉도 배틀에서 금지였던 기억은 없습니다. 기가 없을 때만 한정으로 할 수 있는 비기고, 손이 무지하게 빨라야 2~3히트를 넣은 후 연속기를 넣을 수 있는데, 그거 신경 쓰다가 기회 놓치고...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 좋은 구경 좀 하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 하는 거 보니, 단축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살벌하게 하는 군요. 그 당시 빨간색 츄파춥스 조이스틱, 어디 알카노이드(벽돌 깨기)나 해야 할 거 같은 그런 환경에서 게임하던 우리와, 최근의 4각 8각 산와 세이미츠 그런 장비는 격이 다르기도 하구요.

킹오파의 무한 콤보 모음. 3분 53초부터 96입니다. 즉사기 내지는 한방 콤보가 적절하겠네요.

크라우져 플레이 영상. 가드 유지해도 위아래로 흔들어서 다 잡는 방법은 있습니다.

96의 잡기 거리에 대한 영상. 당시 우리는 연속기라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손 끝에라도 살짝 걸리면 2타가 잡기로 들어가는 연속기.









(작성 중)

2026년 8월 6일 목요일

원스 어폰 어 타임 in 킹오파 (3회)

선생님, 진도 나가요!


미려한 그래픽의 94는 이전의 네오지오 대전격투 게임들과도, 이후의 킹오파와도 달라서 이질적인데 사실은 아이렘에서 이적한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거나

그나마 상식적이었던 캡콤의 뱀파이어와 달리 흉악한 가드캔슬로 악명이 높았던 95라거나

최번개가 13일의 금요일의 프레디에서 따왔다는 건 유명하지만

장거한이 마블 업소빙맨에서 따온 건 잘 모른다거나 (첫 등장. 1965년)

96의 이 한국팀 배경이 실제로 있는 곳인지 모른다거나 (수원 화성)

여기까지 간 김에 이곳도 꼭 가봐야 한다거나

그런 농담이나 하고 싶은데

진도 나가야겠죠?

#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의 취지는

"스타 플레이어만 추앙하지 말고, 판 깔아주고 뒤에서 서포트하는 사람들의 노고도 기억하자"였고(예를 들면 팀 스리핏제로처럼)

부제는 "달봉이형 귀한 줄 알아라"였는데... 갤주를 만나면서 방향을 잃고 이제는 마음대로 가고 있습니다.

연재를 마칠 때 과연 처음 목표로 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지 슬슬 걱정이 됩니다.



팀배틀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일본에서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지요.

당시 발행되던 게임 잡지들을 통해 붕붕마루니, 신주쿠잭키니, 이케부쿠로사라니 그런 이름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둘 배틀팀을 만들었고, PC통신을 통해 팀을 홍보하고 서로 교류하며 배틀을 했습니다.

(링크된 글 꼭 읽어보시길. 미학에 대한 집착을 이해해야 당시 배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PC통신 갈무리가 있다면 좋겠지만 이제는 어디서 찾아보기 힘든 고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고,[1] 잡지로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 살펴봐야죠.

게임챔프 1997년 5월호 아케이드 섹션의 팀배틀 기사를 보면,[2]

“이달의 팀배틀 소식통에서는 팀배틀의 원조인 일본의 팀배틀 대회에 대해 알아본다. 일본에서 가장 전통있는(비록 4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팀배틀 대회인 ‘아테나 배’와 신주쿠 잭키, 붐붐마루, 등 팀 배틀 스타들의 활약상에 대해서도 살펴본다.”라는 인트로로 시작하고,

주요 부분을 요약하자면


1994년 12월 3일 1회 대회.

“버파2가 출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최된 대회”

“팀 배틀사에 기억될 만한 아테나 배 제1회 대회”

“대회를 제패한 팀은 (...) 게메스트의 공략진들로 구성된 철인 캐사오가 이끄는 ‘게메스트 팀’이었다.”


1995년 3월 21일 2회 대회

“아테나 배의 소문이 널리 퍼져 관동 지방 플레이어들이 모여 개최된 제2회 대회”

“사천왕 라우, 신주쿠 잭키, 붐붐마루, 카시와 제프리, 이케부쿠로 사라 등도 이때부터 그들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회 대회 때부터 대회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 대회 때부터 일본의 팀배틀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995년 11월 23일 4회 대회

“대회장도 롯본기로 옮겨졌고, 예선과 본선을 각각 다른 날에 치르는 등 대회 규모가 확대되었다. 참가 팀은 관동 지방, 쿄토 이외에 오사카 팀도 출전했다. 4회 대회는 이로써 명실상부한 일본 전국 팀배틀 대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96년 3월 31일 5회 대회

“최초로 5인제를 채용한 대회. 시기적으로 버파2가 발매되고 상당히 시간이 흘렀을 때였기에 (...) 갖가지 얍삽이가 속출. 울프의 하단 50만 펀치 연타는 유명한 일화. 승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비난을 받았다.”


1996년 11월 17일 6회 대회.

“버파3로의 첫번째 아테나 배. 다시 3인제 방식이 채택.”


이런 식으로 바다 건너의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그리고 잡지사가 직접 대회를 주최하기도 하는데

팀배틀이라는 영역을 다루면서 잡지에 소개되는 게임은 주로 버파와 철권. 2D 쪽은 소외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데, 제가 모르는 부분이 있었다면 추후에 추가하겠습니다.)

그러다 게임라인에도 팀배틀 익스프레스라는 코너가 생기고(1997년 8월호), 2D도 소개가 됩니다.

97년 8월호라고 찍어서 발행했지만 실제로 시중에 유통되는 시기는 6월입니다.[3] 그래서 킹오파96 배틀팀으로 적혀 있습니다. 97은 아직 발매 전입니다. 2페이지로 전국에 있는 배틀팀을 소개하는데, 킹오파는 서울의 타나토스, 패러딘, 필승, 아수라, A-TEAM만 나열되어 있습니다.

당시를 알던 사람으로서 첨언하자면, 담당인 안 기자님이 PC통신(주로 하이텔)에서 배틀팀 이름 수집해서 쓴 꼭지로 추정됩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타나토스는 대방동 중심으로 활동하던 팀인데, 대방은 당시 버파의 성지였고, 안 기자님이 버파를 애정했지요. 패러딘은 기억나지 않고, 필승과 아수라는 2026년 8월 현재에도 제 단톡방 멤버네요. A-TEAM은 이 글을 쓰는 저고.

그외 지역을 알 수 없는 배틀팀이라고 소개된 부분.
금메달리스트 관우의 H.I는 사쇼4 배틀팀으로 올라가 있습니다(사쇼도 하긴 했지요. 주력은 킹오파였지만.). 타나토스는 중복으로 또 들어가 있고. 사쇼4는 위에, 아래 두 곳인데, 이 리스트 대체 뭘까요? (킹오파에 있는 설풍 팀. 96 당시 2위였던 팀입니다.)

이렇게 좀 체계 없이 엉망이라, 1998년 1월호에는 안 기자님의 요청으로 제가 각 팀의 정보를 팀장들에게 직접 써달라고 해서 취합, 잡지사로 전달했습니다.
이 페이지의 목적은 "우리 동네에서 배틀팀에 가입하고 싶은 사람은 이쪽 삐삐 번호로 연락하거나, 우리 아지트 오락실로 찾아와라"였습니다. 그런데 80% 정도의 팀이 신입을 안 받겠다고 해서 의미가 퇴색되었지요.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데이터이겠지만, 저 당시 배틀계에서 활동하고 그 이름들을 추억하는 분들을 위해 세밀하게 올려 봅니다.(팀 소개 순서는 메일 받은 순이었습니다.)(이미지는 누르면 커짐)

당시 팀배틀이라는 신 문화를 접하고 싶은 게이머들이 많았고, 잡지(게임챔프 1997년 5월호)에 실린 세 명의 증언을 봐도 그렇지요. 동네에서 친구들이랑 게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열망이 보입니다.



그런 요청이 많았는지 게임라인 1997년 11월호 팀배틀 익스프레스에 배틀하는 법에 대해 소개가 됩니다.
이제는 꼭 기존 팀에 들어가지 않아도 친구들끼리 팀을 만들 수도 있겠지요?
당시의 풍경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니 상세히 봅시다.
배틀이 주로 이루어지는 오락실에서는 종이컵에 동전 잔뜩 넣어서 기계 위에 올려놓으면 지금 배틀 중이라는 표시였는데, 동네 아무 오락실에서나 그러면 "전세 냈냐" 소리 들었지요. 그럴 때는 그냥 동전을 잔뜩 넣었습니다. 대기 코인이 5~10개가 넘어가면 기다리기 싫어서 보통 다른 기계로 가지요. 물론 아무 오락실에서나 이런 짓을 하지는 않고, 96이 2, 3대 돌아가는 곳에서만 했습니다. 배틀을 하면 기계 하나를 독점으로 쓰게 되고, 그러면 그 동네 게이머들은 그 날은 게임을 하기 힘들어지니까요.
킹오파 배틀 초기에는 40선승이었습니다. 박빙으로 가면 80판을 해야 하니 너무 길었고, 97부터는 30선승으로 줄었습니다.

킹오파는 팀배틀을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달랐기에, 버파, 철권과는 배틀 방식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말하고 싶어서 길게 인용했는데 당시 배틀에는 정(情)이 있었지요.

한국 팀배틀 역사 1회. 버파 편을 썼던, 버파3 배틀팀 토네이도 팀장님의 글에도 이 부분을 지적하고

한국 팀배틀 역사 2회. 킹오파편을 쓰며 저도 이 부분을 말했습니다.

뒤로 갈수록 배틀을 즐기기 위한 툴(Tool)이 아니라 이기기 위한 무언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초창기의 문화는 그게 아니었는데...

초창기, 특히 킹오파96의 경우 바람직한 팀배틀 문화가 정착될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했던 팀이 시선집중. 그 팀장이었던 곰치(이문종)형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게임매거진 기자로 활동하셨고.
형에 대한 회고들을 보면 밥을 얻어 먹었다는 기록이 많은데, 그렇게 이 판을 만드셨지요.
제가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가운데 뒤에서 손에 1000원짜리 들고 "회비 내!!!"라고 절규하고 있는 게 저(me). 그 앞에 시선집중 곰치형, 그 앞이 시선집중 태수형.
연재물 1회 마지막에 나오는 소모임 칼럼에서, 오프모임 날을 잡고 모인다는 부분에 있는 그 날입니다. 이 날 형일이가 크라우저를 들고 나와서 발냄새, 땀냄새 공격으로 재미 좀 보던 날이었지요.
그나마 사람 비슷하게 찍힌 사진.(마이 플레이 중.)

게임매거진 1998년 11월호에 실린 시전집중 팀 소개 글.
저 글은 팀장인 곰치형 혼자 북치고 장구친 내용.(대신 내용 신뢰도 100%의 글이 됨)
당시 매거진 기자로 일하고 있던 본인이 묻고, 본인이 답하면 모양새가 이상하니 전수의 이름만 빌려서 올려놨음을 당사자에게 확인(2026년 8월)했습니다.


중요하지요. 
그리고 96 초창기에 유일한(?) 대학생 팀이어서, 다른 96 팀이 만들어지면 무조건 시집(당시에는 줄여서 이렇게 부르기도 함)과 한번 배틀은 하고, 그 후에 신생팀은 활동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런 의미로 산 증인이고, 저는 배틀 문화를 돈독하게 만드는데 큰 영향을 주었기에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표현에 따라 아 다르고 어 다른 건데, 무한을 허용한 게 아니고요.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난 건데, 뭘 어떻게 금지를 합니까.
대전격투 게임의 특성을 함축한 명언이 있지요.
무한의 창시자 천안팀은 우리 동네에서는 다 쓰는 거라, 남들도 다 하는 건 줄 알았다, 라고 했지요.
당시 고2? 고1?이었던 학생들이 기차 타고 올라와서 A-TEAM과 배틀을 하기도 했습니다. 96 후반에는 혼자 천안 놀러가서 1대1 밥내기 배틀을 했었는데, 레오나 무한(정확하게 무한은 아니지만. 앉아 강손 - 그랜드 세이버 반복)에 당해서 밥을 뜯긴 기억이 납니다.

회고 글에 나오는 금메달리스트 관우의 배틀팀 데뷔 스토리는 완전 이거지요.
(대전 감사합니다 3권의 내용)

연재 1회에 있는 투니버스 인터뷰에 찍힌 시선집중 태수형(오른)과 양남원(왼)의 모습.
2회 대회(96)때 저는 양남원의 매츄어에 패했습니다.




전문 분야도 아닌 버파에 철권으로 이야기를 뻗어가다가 간신히 고삐를 틀어쥐고 마무리했네요;;;

4회부터는 킹오파 이야기만 하겠습니다.(꾸벅)


덧) 자료 조사하다 보여서... 
게임라인 1997년 9월호
(나우누리. 철권팀. 2P코인. 신의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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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우누리가 별풍선 쏘는 아프리카TV가 되면서 다 날아갔다. 

[2] 게임챔프 창간호부터 볼 수 있는 곳.

https://www.gamemeca.com/magazine/?mgz=gamechamp

[3] 당시에는 2개월 뒤의 제호를 찍어서 발행했는데, 이걸 1개월로 줄이는 과정, 잡지사들 대통합으로 이뤄낸 이야기가 게이머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한국 게임잡지 실록” 연재로 실렸다. 이 실록만 모아서 전자책으로 나와도 좋을 텐데.

https://x.com/krucef/status/1293511045374291974  



영화 반칙왕. 송강호가 프로레슬링 체육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망설이는 장면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교동 오락실. 97 때는 여기가 아지트였습니다. 그래서 실력이 떡락했고요;;;

2026년 8월 3일 월요일

원스 어폰 어 타임 in 킹오파 (2회)

내가 이걸 왜 쓰겠다고 했더라??


가장 큰 산인 갤주를 넘었으니 이제 다시 본론으로.


나는 이 주제, 옛날 킹오파 이야기를 의무감에 하고 있다.

계속 쓰다 보면 흥이 나고 재미도 붙겠지만, 현재는 0화를 섣불리 올린 걸 후회하고 있다. 사전제작 드라마처럼 싹 쓰고 나서 잘라서 올릴 걸... 그러면 좀 쓰다 Run 칠 수도 있었는데;;;

소실된 줄 알았던 0화의 딱 그 자료를 제공 받고 너무 기뻐서, 내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선언적으로 확 올려버렸다.


이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은 여러 차례 있었다.


1. 장강명의 소설 “열광금지 에바로드”를 읽고,

나에게도 마법의 가을이 있었다! 라며 그 시절 A-TEAM 이야기를 써보려 했다.

하지만 스토리는 고저차가 있어야 힘을 받고 굴러가는 법. 그렇다면 누군가를 수렁에 빠트렸다가 건져야 하는데, 아무리 캐릭터라도 현실의 누군가(=친구)에게서 따와 만들어진 존재인데, 그 당시 나이에 고난이라면 가족 문제가 대표적이고, 남의 가정을 창작으로 맘대로 휘젓는다는 게 영 마뜩치 않아 + 다른 타개책이 떠오르지 않아 접었다.

(에바로드는 다큐고, 열광금지 에바로드 소설은 다큐를 바탕으로 한 창작이다.)


2. 그러다 관우가 금메달을 따고, 어머니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흘릴 때 같이 울었던 사람으로서,

당시 게시판에 쏟아졌던 늙은이들의 오락실 체험담처럼 뭔가를 쓰자...라는 다짐은 게으름에 묻혀 차일피일...



3. 이번에는 만화가 옆구리를 콕 콕 찌른다.

대전 감사합니다.가 너무 재밌다.


회차 단위도, 페이지 단위도 아닌, 칸 단위로 낄낄거리면서 읽었다. 공방 심리가 잘 표현되어 있어서, 한때 찐하게 몸 담았던 사람으로서 애정할 수밖에 없다.

애니메이션 버전도 나오고 일드도 나오니 아직 안 보신 분은 꼭 보시길.

물론 난 만화판을 추천한다.

https://ridibooks.com/books/111143825

1권 미리보기 가능하니 츄라이 츄라이.

(오류가 있어서 수정함)
8권. 스크린톤으로 판정 구현해 놓은 모습. (게임 캐릭터가 아니고 현실 모녀의 싸움.)
박스는 캐릭터의 크기. 두 캐릭터가 서로 겹치지 않고 밀어내기 위한 판정. 오른쪽 사람이 하단으로 숙이니 (보는 쪽에서) 왼쪽 다리에 작은 박스가 하나 더 생김(이걸 누가 알아본다고! ㅋㅋ 이걸 쓱 지나가는 컷에 구현하다니! ㅋㅋㅋ)
진한 스크린톤 부분도 판정 박스. 왼쪽 사람이 정권을 지르니 공격 판정이 팔 하부로 1배, 상부로 3배쯤 더 생겼다. (이 정도면 대공은 무리라도 무지성 점프 정도는 컷이 가능하다.)
오른쪽 사람은 박스가 간당간당해서 안 맞는다. 머리카락에 맞아도 Hp는 깎이지 않는다. 가로 선으로 상체와 하체를 구분해 놓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시는 분 지식을 나눠주시면...(굽신 굽신)
오른쪽 사람의 박스 안쪽 연한 스크린톤은 만화적 표현인가 보다. 저 모션에서 공격 판정이 나오면 이상하잖아... 아니면 어떤 날먹 사기 기술이거나... 찐 공격과의 만화적 구분을 위해 연한 색을 쓴 건지...
왼쪽 사람은 공격 판정만 있고 피격 판정이 없는데, 가로 방향의 효과선으로 이동을 표현한 걸 보니 아마도 스파3 마코토의 질풍의 무적기 버전(존재하지 않을텐데) 아닌가?
(19초)

그리고 이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만화 안에는 없다. 알아볼 놈만 알아 봐!
이런 콘텐츠를 어떻게 참냐고요!!!!!!
(추가) 아이고... 4권에서 한번 나왔군요. 재독을 안 해서(인생이 고달플 때를 위해, 아끼느라) 잊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야기 흐름 상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서 신경 안 썼는데, 너무 빤스 벗고 소리 지른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럽네요;;; 



4. 겨울에 이융희 작가/교수와 우연히 연락이 닿아 점심을 같이했다.

새 웹소설 집필을 준비중인데, (자세하게 들었지만 아직 런칭 전인 거 같으니 간략히) 90년대 배경의 대전격투 게이머 이야기를 쓰려 한다. 본인도 철권 팀배틀러 출신이지만 90년대 오락실은 본인이 경험하지 못한 시대니, “그 당시 얘기 좀 해주세요. 킹오브의 전설인 주재명님.”이라고 해서, 으잉?? 하다가 10년 전에 뱉었던 말이 확 떠올랐다.

이융희 교수님이 아직 박사 과정이던 시절. 나는 워크라이프의 2번째 책인 세카이계란 무엇인가를 막 출간했던 시절.

당시에는 아직 텍스트릿이라는 이름도 정해지기 전이었는데, 책의 만듦새를 보고 융희 작가가 ‘너 내 동료가 되라’를 시전하러 왔다.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 킹오파 팀배틀 역사에 대한 콘텐츠가 있을 때, 그 안에 내 이름이 등장하지 않거나, 나한테서 인터뷰를 따 가지 않았다면 그건 다 허당. 이라는 말을 했다. 막 창업해서 2번째 책을 내던 신입 사장의 호기로운 블러핑으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뱉은 말은 지켜야지. 나는 완성한다. 이 글을...


5. 아키라꼬마 다큐가 넷플릭스에 풀렸다. 우리 바닥(격게)은 난리가 났다.

유투브에서 한 댓글을 본다.

킹오파 관련으로 다큐를 만들고 싶다면 나에게 연락해라. 나는 오늘 같은 날을 위해 당시 자료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우리 킹오파 쪽에도 천재가 있다.”

쓱싹 보니 풍림화산 한정훈으로 추정된다. 예전부터 애정하던 후배다. 우르르 몰려다니던 97 시절에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00 시절에 인컴 버전이 들어왔던 신천역 오락실에 캠코더를 들고와서 밤새 콤보 비디오를 찍고, 모두를 위해 게시판에 공유했던 열정맨이다. 당시 옆에서 이틀 정도 같이 날 새며 도와준 기억이 난다.

“노량진에서 가끔 보던 형이다”라면서 96 시절 이야기를 쓱 찔러줬는데 몰랐단다.

아... 갤주를 사관(史官) 자리에서 몰아내고 새로 세우고 싶었던 사관이 정훈이였는데... 96 시절은 모르는구나. 결국 내가 나서야 하네. 에잉...[3]하면서 0화의 저 자료를 찾고 있었다. 이사하면서 포장한 박스 안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디지털이 아닌 실물본은 결국 못 찾았다)

자료를 제공해 주신 오영욱 선생님(한국 게임 데이터베이스 아카이브).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꾸벅)



6. 여기까지가 외부적인 자극이고,

내부적인 요인도 있다.


톡 떨어진 잉크가 사방으로 퍼지듯이,

기억이 자꾸 블랙으로 침식된다.

(내가 지금 머리 관련 병을 앓고 있긴 하지만) 기억 부분은 심각한 증상이라기보다, 뇌의 기전이 원래 그렇단다. 일종의 방어 작용.

한동안 힘들었다. 아파서 입원하고, 폐업하고, 이혼하고...

하나만 해도 힘든데, 연타로 얻어맞았다.

그래서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그냥 뚜껑 덮어놓고 지냈다.

시간이 지나니 3연타 맞은 시기의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더 시간이 지나니 잉크처럼 퍼지며 잠식 당하는 기분이다.

폐업 후에 워크라이프 책들을 하나하나 리뷰, 정말 다시(리) 보려고(뷰) 했다. 

(당시 생각한 이름은 따로 있지만) 원스 어폰 어 타임 in 워크라이프 같은 북리뷰 유투브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워크라이프로 여덟 권 냈으니 8회 찍어보고,

흥이 나면 타사의 덕덕한 책들 리뷰를 이어가고, 아니면 죽기 전에 기록용으로 남긴 셈 치자는 심산이었다.(당시에는 내 병이 발병 후 수명 10년, 이라는 말도 있었다. 다행히 나는 그쪽 루트로 가는 중은 아닌 거 같다) 그런데 영 흥이 안 나서 첫발도 못 떼고 지지부진한 채 그냥 뚜껑 덮어놓고 살다가, 기억이 너무 희미해지는 느낌이라 + 곧 50인데 털고 가자는 생각으로, 킹오파까지 전체 인생을 회고하고자 키보드를 잡았다. 부가 효과로 자발적 브레인포그 상태도 걷힌다면 좋은 거고...

뭐, 그렇게 시작된 기획이다. 노인대학에서 진행하는 자서전 쓰기 같은...

그렇게 그냥 내 이야기 주절주절하려고 했는데,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갤주를 만나면서 심연 속으로 빠진다.




왜 다시 결론이 갤주야! 

하여간 마성의 남자...



3회부터는 이제

아소비와 오와리다.


덧) 무적기의 흉악함.(1분 4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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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포고 출신 쌈무양이 아이즈원으로 데뷔하던 시기에, 놀았다느니 그런 음해하는 글이 인터넷에 돌았는데, 개포고에서 무슨 양아치야... 그리고 만약 좀 놀았다고 해도, 개포고에서 놀았다의 수준과 전국 기준의 놀았다의 수준이 확연히 다르기에, 그런 폭력적인 말 함부로 퍼트리지 말라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던, 개포초 개원중 휘문고 나온 개포동 마이. 중3 때 1짱이었던 우리 학교의 그 녀석은 고등 연합고사 점수 미달로 먼 지역의 공고로 갔는데, 거기서는 빵셔틀급이었단다. + 고등학교도 내 때가 처음으로 송파 쪽 학생도 받아서, 송파(잠실) 출신과 강남(대치동) 출신이 휘문의 같은 교실에 앉아 있던 첫 세대인데(송파 쪽으로 가는 직통 버스가 없어서 봉고차를 대절해서 통학을 했다. 누구 한 명 청소 당번이라도 걸리면 그 파티 전체가 1시간을 기다렸다), 둘의 문화가 너무 달랐다. 잠실 쪽은 락카페에서 밤새고 학교에 온다거나, 맥주로 머리 감아서 색을 뺀다거나... 문화 충격 수준이었다. 이건 20대 후반에 잠실의 대형 학원에서 일하며 다시 한번 경험했는데, 그 학원에 다니던 아이들의 어떤 자유분방함(?)에 ‘요즘 아이들은 이런가?’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지만, 대치동에서 이사 온 아이가 내가 일하던 학원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바로 깨졌다. ‘아 맞아. 우리 때는 저랬지.’ 그 아이도 1주일도 안 되서 주변에 물 들어 학원 안에서 뛰어 다니고, 소리 지르고... 전국 기준으로는 잠실 정도만 해도 꽤 좋은 학군으로 보지만, 그 안에서 보면 또 다르다. (전역하고 잠5에서 10년 넘게 살았다.)

[2] 워크라이프에서 발간한 도서들처럼, 본문과 상관은 있지만 흐름을 방해하는 것들을 각주로 빼고 싶은데(주로 드립), 네이버 블로그처럼 편하게 지원하지 않아서 HTML까지 공부하고;;; 이제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으셈. 나 이제 고삐 풀렸어.

[3] 정훈이는 99부터 손을 놓아버렸던 달봉형의 뒤를 이어 커뮤니티 주최의 대회를 철이와 같이 꾸준히 진행했고, 게시판에 각 캐릭터 별 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 소개 같은 기획을 연재하기도 했다. 킹오파에 대한 애정과 넓은 시야로 플레이어들을 관찰하며 당시에도 무대 앞에서나 뒤에서나 꾸준히 우리 배틀 문화를 위해 땀 흘렸다. 00 중계 당시 해설자로 정훈이가 들어갔으면 했지만, 서울대의 벽은 높았다. / 00 인컴 장에는 낮에 신의욱도 왔다. 인컴은 정식 출시 전에 수익성 예측을 위한 로케테스트 버전을 말하는데, 당시에는 아직 게임에 대한 흥미가 남아 있었나 보다. 새 게임을 발 빠르게 확인하러 온 걸 보면. 당시에도 워낙 유명인이라 주변에서 여러 우와사(수근거림)가 있었고,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97 시절에 우리 팀에서 같이 놀기도 했지만, 나와는 딱히 추억이 없어서 회포를 풀거나 한 기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