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8일 토요일

원스 어폰 어 타임 in 킹오파 (4-1회)

패러디

마블 투혼이라고 이제 막 나온 게임이 있습니다.

여기 데드풀이 제4의 벽을 허무는 캐릭터 답게 온갖 패러디가 잔뜩 나오는데



예전에 아래 글 쓰면서 놀았던 사람으로서 
영상이 재미있어서 같이 보자고 가지고 왔습니다.

게이머즈 2000년 11월호에 썼던 특집



2004년 2월에는 이러고 놀았네요.
지금은 사라진 블로그인이라는 곳에 썼던 거 같은데...


이런 거 좋아하던 20대가 자라 30대에 출판사 차려서 덕덕한 각주 달아서 내고... 뭐 인생이 그런 거지요.

2026년 8월 7일 금요일

원스 어폰 어 타임 in 킹오파 (4회)

나 최영의야. 그러고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 - 96 무한이라 불리는 기술들

킹오파 96이 어떤 게임이었는지, 예전에 즐기셨던 분은 기억을 더듬는데 도움 되시라고 영상 몇 개 가져왔습니다.

고수로 검색해서 나오는 것들과 알고리즘으로 뜨는 영상들을 꽤 봤는데, 96이 워낙 입력이 빡빡한 게임이라, 어이없는 순간에 콤보가 끊기거나 서로 1대만 때리고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순간들이 좀 보이더군요. 97, 98은 그렇게 외계인처럼 하는 중국인들이 96만 딱히 못할 이유는 없잖아요? 96이 입력이 좀 그렇습니다.

무한설풍 OK가 되면 게임이 얼마나 허망하게 끝나는가의 예시.

기스가 어퍼를 쓰는데 96 때 어퍼 금지 같은 건 없었습니다.
금지와 허용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길게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무한설풍만 없고 지뢰진 버그 추가타와 가드 유지, 다단히트는 OK인 배틀.


가드 유지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 커맨드잡기에 잡히지 않는 특성을 활용하여 커잡 캐릭터를 바보로 만드는 기술인데, 96 당시에는 존재를 몰랐던 걸로 기억합니다. (RMS는 알았는데 제 머리에만 없는 건지.) 

무하마드 알리의 가드 유지(마지막의 댄스까지 봐야 찐)

당시에는 무한 잡기(실제로 무한 아님)라는 선입력 잡기가 화두였지요.
"유 존슨? 나 최영의야. 그러고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
커맨드 한 번만 입력하면 화면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걸어가는 동안 범위 안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잡힌다. 이런 이미지로 게시판을 통해 퍼졌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무위키 선입력 킹오파96 부분 설명에 있듯이, 몇 프레임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과 96의 커맨드잡기에 실패 모션이 없어서(98에 생김) 생기는 오해인데, 실제로는 물 위에 떠있는 백조의 발처럼 계속 입력을 해야 합니다.
나는 한번만 입력하고, 상대는 뭐 내밀거나 움찔하기만 하면 잡기 범위 안에 들어오는 순간 무조건 잡히는 무한 잡기라는 식으로 퍼져서, 게시판 글만 보고 시범을 보지 못한 지방의 겜돌이들이 많이 물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R.M.S. 류명상군이 찾아냈습니다.
이걸 금지니 어쩌니 할 때 문제는, 뒤로 두바퀴 계열의 고로 초필 잡기 같은 경우. 선입력과 버튼 유지로 계속 빨빨거리며 입력을 하면서 뒤로 갈 때(방어가 자동으로 됨), 그 범위 안으로 조심성 없이 발을 들일 때 훅 딸려 올라가는 경우. 이게 선입력인지, 보고 잡은 건지 판정할 수 있냐는 거지요. 잡지 글에 애매하게 써 있는데, 양심에 맞기는 수밖에...

다단히트는 모든 캐릭터, 모든 기본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R.M.S. 류명상군이 찾아냈습니다.
이 테크닉도 배틀에서 금지였던 기억은 없습니다. 기가 없을 때만 한정으로 할 수 있는 비기고, 손이 무지하게 빨라야 2~3히트를 넣은 후 연속기를 넣을 수 있는데, 그거 신경 쓰다가 기회 놓치고...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 좋은 구경 좀 하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 하는 거 보니, 단축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살벌하게 하는 군요. 그 당시 빨간색 츄파춥스 조이스틱, 어디 알카노이드(벽돌 깨기)나 해야 할 거 같은 그런 환경에서 게임하던 우리와, 최근의 4각 8각 산와 세이미츠 그런 장비는 격이 다르기도 하구요.

TMI: 요즘 삼덕사 레버로 불리는 그 모양의 스틱은, 96 당시에는 퍼지는 중이었다. 여전히 츄파춥스 모양인 곳도 있고, 외형은 연두색 삼덕사여도 하단에 4각, 8각 가이드 없이 동글뱅이로 기술 입력 받는 기기 등 각양각색이었다. 배틀은 레버 반응 좋고, 주인아저씨가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오락실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 오락실 원정 다니다 네오지오 원 아케이드 기기가 있는 곳에서 A B C D 일자 키 배열에 또각또각 돌아가는 레버로 게임을 하는 날은 감격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사람마다 달라서 동글이가 아니면 기술이 안 나간다는 사람도 있긴 했다. 당시와 이후를 비유하면, 이후의 4각이니 8각이니 하는 시대로 넘어간 장비는 기계식 키보드, 당시는 이게 눌린 건지 안 눌린 건지 감도 잘 안 오는 멤브레인 키보드의 시대다. 그때의 눈으로 지금 중국인들의 96 플레이(경험치가 30년)를 봐도, 한국 배틀인들이 못 이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 갤주가 중국 다녀왔던 시절(2007년)의 글을 보면, 레버와 버튼이 압도적으로 좋다는 내용이 있다.


킹오파의 무한 콤보 모음. 3분 53초부터 96입니다. 즉사기 내지는 한방 콤보가 적절하겠네요.


크라우저 플레이 영상. 가드 유지해도 위아래로 흔들어서 잡을 방법은 다 있습니다.

96의 잡기 거리에 대한 영상. 당시 우리는 연속기라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손 끝에라도 살짝 걸리면 2타가 잡기로 들어가는 연속기.

1회 글에 있던, 갤주가 장거한 버그 무한이라고 말하던 기술

아래 영상 10분 28초 같은 상황에서 
장거한에게 번번이 잡혀서 졌다 같은 말을 하고 싶은가 본데,
어색이의 손이 그렇게 성공률이 높지 않습니다. 클락 알젠틴 후 추가타 성공률 50% 이하. 이오리 아오이 3단 전타 성공시키려면(이 말 자체가 웃기지 않나?) 기계가 반대편까지 들썩들썩할 정도. 이런 언밸런스함(국내 1위라는 사람이 뭐 저래)에 대한 증언도 찾아보면 잔뜩 나옵니다.

버그 잡기를 “이것도 실력이야” 같은 말을 했다는 건 갤주의 상상이고, 어색이라면 “너도 해. 장거한 좋아.”겠지요.
그를 옆에서 오랫동안 본 우리에게는 그냥 어색이 럭키 뽀록이 터졌구나인데, 상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하필 그때 잡기가 성공해 버려서,
구석에 몰리면 그냥 죽는구나, 무한 똥창이구나, 구를까? 기다릴까? ABCD로 철구 멈추는 순간 반격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면서 허상과 싸운듯.
어색이가 잘 하는 건 심리. 그것도 당하는 사람이 "아오 ㅆ 내가 저런 거에 당하다니" 싶은 정도로 당하고 나면 자괴감 드는 심리.

우리 친구들이 봤을 때 구석 잡기는 그냥 이거인데.
체커(사포 SIN)
분명 부스터 다 썼는데 갑자기 하나 더 있대. 뭐야 이 럭키 뽀록은?
(요즘은 AI가 승리에 집착해 세이프티도 다 풀어버리고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행동한 결과(이후 폐차 수준 됨) + 슬립스트림으로 달려서 세이브된 에너지가 있음 등등 상세한 분석이 많던데, OVA 하나씩 나올 때 실시간으로 보던 우리에게는 그냥 카가 이기게 하려고 마지막에 던진 데우스엑스마키나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후대의 설명이 더 멋있긴 함.)

상준이 번개는 이 수준으로 못했음. 97에는 이 수준까지 오르긴 함.

근데 자료 조사하다 보니 저런 헛소문이 퍼진 게 반은 제 탓이더군요.

어색이가 버그 잡기를 쓸 줄 안다는 게 1회 대회 시기에 써 있어서, 저걸로 1짱 먹었다고 오해하는데...
(저 글은 97 출시 후에, 1997년 10월쯤에 작성된 글)
1회 대회 때는 버그 잡기 같은 거의 존재를 몰랐고,
1회 대회에 참가했던 R.M.S 류명상군이 뒷풀이 때 “형, 이런 것도 있어”라면서 전파한 것. 그 뒤로 연습을 했다고 해도 하드웨어가 명상이가 아니고 어색이인데...(96 당시 배틀했던 사람들은 이 문장으로 끝일텐데. 더이상 설명하기도 잡스럽다.)



이쯤되면 주구장창 나오는 저 R.M.S.라는 사람에 대해 써야 하지 않을까.

게임매거진 1998년 9월호. 아수라팀 소개글.
게임매거진 1998년 12월호에 실린 아수라 입상 소식


RMS를 소개하기 위해 이 긴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한때 유행어였던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이 말이 당시의 그를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실시간으로 흥미(집중력)가 식어가는 게 모니터 너머로도 보인다.
‘대전 감사합니다’에서도 표현되는데, 백마디 말보다 한번 대전하는 게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다.

김응용 감독의 “투수는 선동열이 제일 잘하고, 타자는 이승엽이 제일 잘하고, 야구는 이종범이 제일 잘한다.”는 말이 유명한데,
명상이는 GAME을 잘했다.
누가 1등이고, 누가 무슨 캐릭터 장인이고...
명상이 앞에서는 다 부질 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약점은 있었고,
건담의 토미노 감독은 “미혹을 떨쳐 버린 샤아는 아무로도 순삭이다.”라는 인터뷰를 하는데,
팬들은 미혹을 버린 샤아는 샤아가 아니라고 이해한다.
이 인터뷰를 보면서 RMS가 생각났다.
RMS가 지존으로 군림하는 세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지한 RMS는 RMS가 아니다.

그래도 인물상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건 어떤가. 
RMS는 미드 프렌즈의 조이다.
조이는 여자를 쉽게 꼬시지만 그 관계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RMS의 플레이는 놀랍지만 진심 모드의 유지 시간이 짧다.

97 때 아키라꼬마가 우리 팀에서 같이 놀던 시기가 있다.
당시 그의 쿄 플레이는 놀라웠는데
점프 강킥 - 지상 강공격 - 물기 시리즈가 기본이라면, 아키라꼬마는 상대를 구석으로 몰고 역가드 점프 공격 - (상대가 히트백으로 뒤로 밀릴 때) 백점프 나락 - 지상 강공격 - 물기 시리즈를 97 때 처음으로 고안해서 사용했다.
누가 만든 기술을 따라하는 건 쉽다. 처음부터 고안해서 쓰려면 독자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아키라꼬마가 게임 안의 특정 캐릭터를 빈 공간이 없게, 전부 까만 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파는 스타일이라면
RMS의 흥미는 빨간색 영역에 있다. 

2026년 8월 6일 목요일

원스 어폰 어 타임 in 킹오파 (3회)

선생님, 진도 나가요!


미려한 그래픽의 94는 이전의 네오지오 대전격투 게임들과도, 이후의 킹오파와도 달라서 이질적인데 사실은 아이렘에서 이적한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거나

그나마 상식적이었던 캡콤의 뱀파이어와 달리 흉악한 가드캔슬로 악명이 높았던 95라거나

최번개가 나이트메어의 프레디에서 따왔다는 건 유명하지만

장거한이 마블 업소빙맨에서 따온 건 잘 모른다거나 (첫 등장. 1965년)

96의 이 한국팀 배경이 실제로 있는 곳인지 모른다거나 (수원 화성)

여기까지 간 김에 이곳도 꼭 가봐야 한다거나

그런 농담이나 하고 싶은데

진도 나가야겠죠?

#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의 취지는

"스타 플레이어만 추앙하지 말고, 판 깔아주고 뒤에서 서포트하는 사람들의 노고도 기억하자"였고(예를 들면 팀 스리핏제로처럼)

부제는 "달봉이형 귀한 줄 알아라"였는데... 갤주를 만나면서 방향을 잃고 이제는 마음대로 가고 있습니다.

연재를 마칠 때 과연 처음 목표로 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지 슬슬 걱정이 됩니다.



팀배틀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일본에서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지요.

당시 발행되던 게임 잡지들을 통해 붕붕마루니, 신주쿠잭키니, 이케부쿠로사라니 그런 이름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둘 배틀팀을 만들었고, PC통신을 통해 팀을 홍보하고 서로 교류하며 배틀을 했습니다.

(링크된 글 꼭 읽어보시길. 미학에 대한 집착을 이해해야 당시 배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PC통신 갈무리가 있다면 좋겠지만 이제는 어디서 찾아보기 힘든 고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고,[1] 잡지로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 살펴봐야죠.

게임챔프 1997년 5월호 아케이드 섹션의 팀배틀 기사를 보면,[2]

“이달의 팀배틀 소식통에서는 팀배틀의 원조인 일본의 팀배틀 대회에 대해 알아본다. 일본에서 가장 전통있는(비록 4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팀배틀 대회인 ‘아테나 배’와 신주쿠 잭키, 붐붐마루, 등 팀 배틀 스타들의 활약상에 대해서도 살펴본다.”라는 인트로로 시작하고,

주요 부분을 요약하자면


1994년 12월 3일 1회 대회.

“버파2가 출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최된 대회”

“팀 배틀사에 기억될 만한 아테나 배 제1회 대회”

“대회를 제패한 팀은 (...) 게메스트의 공략진들로 구성된 철인 캐사오가 이끄는 ‘게메스트 팀’이었다.”


1995년 3월 21일 2회 대회

“아테나 배의 소문이 널리 퍼져 관동 지방 플레이어들이 모여 개최된 제2회 대회”

“사천왕 라우, 신주쿠 잭키, 붐붐마루, 카시와 제프리, 이케부쿠로 사라 등도 이때부터 그들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회 대회 때부터 대회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 대회 때부터 일본의 팀배틀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995년 11월 23일 4회 대회

“대회장도 롯본기로 옮겨졌고, 예선과 본선을 각각 다른 날에 치르는 등 대회 규모가 확대되었다. 참가 팀은 관동 지방, 쿄토 이외에 오사카 팀도 출전했다. 4회 대회는 이로써 명실상부한 일본 전국 팀배틀 대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96년 3월 31일 5회 대회

“최초로 5인제를 채용한 대회. 시기적으로 버파2가 발매되고 상당히 시간이 흘렀을 때였기에 (...) 갖가지 얍삽이가 속출. 울프의 하단 50만 펀치 연타는 유명한 일화. 승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비난을 받았다.”


1996년 11월 17일 6회 대회.

“버파3로의 첫번째 아테나 배. 다시 3인제 방식이 채택.”


이런 식으로 바다 건너의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그리고 잡지사가 직접 대회를 주최하기도 하는데

팀배틀이라는 영역을 다루면서 잡지에 소개되는 게임은 주로 버파와 철권. 2D 쪽은 소외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데, 제가 모르는 부분이 있었다면 추후에 추가하겠습니다.)

그러다 게임라인에도 팀배틀 익스프레스라는 코너가 생기고(1997년 8월호), 2D도 소개가 됩니다.

97년 8월호라고 찍어서 발행했지만 실제로 시중에 유통되는 시기는 6월입니다.[3] 그래서 킹오파96 배틀팀으로 적혀 있습니다. 97은 아직 발매 전입니다. 2페이지로 전국에 있는 배틀팀을 소개하는데, 킹오파는 서울의 타나토스, 패러딘, 필승, 아수라, A-TEAM만 나열되어 있습니다.

당시를 알던 사람으로서 첨언하자면, 담당인 안 기자님이 PC통신(주로 하이텔)에서 배틀팀 이름 수집해서 쓴 꼭지로 추정됩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타나토스는 대방동 중심으로 활동하던 팀인데, 대방은 당시 버파의 성지였고, 안 기자님이 버파를 애정했지요. 패러딘은 기억나지 않고, 필승과 아수라는 2026년 8월 현재에도 제 단톡방 멤버네요. A-TEAM은 이 글을 쓰는 저고.

그외 지역을 알 수 없는 배틀팀이라고 소개된 부분.
금메달리스트 관우의 H.I는 사쇼4 배틀팀으로 올라가 있습니다(사쇼도 하긴 했지요. 주력은 킹오파였지만.). 타나토스는 중복으로 또 들어가 있고. 사쇼4는 위에, 아래 두 곳인데, 이 리스트 대체 뭘까요? (킹오파에 있는 설풍 팀. 96 당시 2위였던 팀입니다.)

이렇게 좀 체계 없이 엉망이라, 1998년 1월호에는 안 기자님의 요청으로 제가 각 팀의 정보를 팀장들에게 직접 써달라고 해서 취합, 잡지사로 전달했습니다.
이 페이지의 목적은 "우리 동네에서 배틀팀에 가입하고 싶은 사람은 이쪽 삐삐 번호로 연락하거나, 우리 아지트 오락실로 찾아오세요"였습니다. 그런데 80% 정도의 팀이 신입을 안 받겠다고 해서 의미가 퇴색되었지요.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데이터이겠지만, 저 당시 배틀계에서 활동하고 그 이름들을 추억하는 분들을 위해 세밀하게 올려 봅니다.(팀 소개 순서는 메일 받은 순이었습니다.)(이미지는 누르면 커짐)

당시 팀배틀이라는 신 문화를 접하고 싶은 게이머들이 많았고, 잡지(게임챔프 1997년 5월호)에 실린 세 명의 증언을 봐도 그렇지요. 동네에서 친구들이랑 게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열망이 보입니다.



그런 요청이 많았는지 게임라인 1997년 11월호 팀배틀 익스프레스에 배틀하는 법에 대해 소개가 됩니다.
이제는 꼭 기존 팀에 들어가지 않아도 친구들끼리 팀을 만들 수도 있겠지요?
당시의 풍경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니 상세히 봅시다.
배틀이 주로 이루어지는 오락실에서는 종이컵에 동전 잔뜩 넣어서 기계 위에 올려놓으면 지금 배틀 중이라는 표시였는데, 동네 아무 오락실에서나 그러면 "전세 냈냐" 소리 들었지요. 그럴 때는 그냥 동전을 잔뜩 넣었습니다. 대기 코인이 5~10개가 넘어가면 기다리기 싫어서 보통 다른 기계로 가지요. 물론 아무 오락실에서나 이런 짓을 하지는 않고, 96이 2, 3대 돌아가는 곳에서만 했습니다. 배틀을 하면 기계 하나를 독점으로 쓰게 되고, 그러면 그 동네 게이머들은 그 날은 게임을 하기 힘들어지니까요.
킹오파 배틀 초기에는 40선승이었습니다. 박빙으로 가면 80판을 해야 하니 너무 길었고, 97부터는 30선승으로 줄었습니다.

킹오파는 팀배틀을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달랐기에, 버파, 철권과는 배틀 방식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말하고 싶어서 길게 인용했는데 당시 배틀에는 정(情)이 있었지요.

한국 팀배틀 역사 1회. 버파 편을 썼던, 버파3 배틀팀 토네이도 팀장님의 글에도 이 부분을 지적하고

한국 팀배틀 역사 2회. 킹오파 편을 쓰며 저도 이 부분을 말했습니다.

뒤로 갈수록 배틀을 즐기기 위한 툴(Tool)이 아니라 이기기 위한 무언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초창기의 문화는 그게 아니었는데...

초창기, 특히 킹오파96의 경우 바람직한 팀배틀 문화가 정착될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했던 팀이 시선집중. 그 팀장이었던 곰치(이문종)형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게임매거진 기자로 활동하셨고.
형에 대한 회고들을 보면 밥을 얻어 먹었다는 기록이 많은데, 그렇게 이 판을 만드셨지요.
TMI: 나우누리 아이디가 곰치77이었다. 실제 출생은 빠른 78이었고, 77과만 친구로 지냈다.(저는 꼬인족보만드는사람들극혐합니다 운동본부 소속.)
제가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가운데 뒤에서 손에 1000원짜리 들고 "회비 내!!!"라고 절규하고 있는 게 저(me). 그 앞에 시선집중 곰치형, 그 앞이 시선집중 태수형.
연재물 1회 마지막에 나오는 소모임 칼럼에서, 오프모임 날을 잡고 모인다는 부분에 있는 그 날입니다. 이 날 형일이가 크라우저를 들고 나와서 발냄새, 땀냄새 공격으로 재미 좀 보던 날이었지요.
그나마 사람 비슷하게 찍힌 사진.(마이 플레이 중.)

게임매거진 1998년 11월호에 실린 시전집중 팀 소개 글.
저 글은 팀장인 곰치형 혼자 북치고 장구친 내용.(대신 내용 신뢰도 100%의 글이 됨)
당시 매거진 기자로 일하고 있던 본인이 묻고, 본인이 답하면 모양새가 이상하니 전수의 이름만 빌려서 올려놨음을 당사자에게 확인(2026년 8월)했습니다.


중요하지요. 
그리고 96 초창기에 유일한(?) 대학생 팀이어서, 다른 96 팀이 만들어지면 무조건 시집(당시에는 줄여서 이렇게 부르기도 함)과 한번 배틀을 하고(=찍먹), 그 후에 신생팀은 활동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런 의미로 산 증인이고, 저는 배틀 문화를 돈독하게 만드는데 큰 영향을 주었기에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표현에 따라 아 다르고 어 다른 건데, 무한을 허용한 게 아니고요.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난 건데, 뭘 어떻게 금지를 합니까.
대전격투 게임의 특성을 함축한 명언이 있지요.
무한의 창시자 천안팀은 우리 동네에서는 다 쓰는 거라, 남들도 다 하는 건 줄 알았다, 라고 했지요.
당시 고2? 고1?이었던 학생들이 기차 타고 올라와서 A-TEAM과 배틀을 하기도 했습니다. 96 후반에는 혼자 천안 놀러가서 1대1 밥내기 배틀을 했었는데, 레오나 무한(정확하게 무한은 아니지만. 앉아 강손 - 그랜드 세이버 반복)에 당해서 밥을 뜯긴 기억이 납니다.

회고 글에 나오는 금메달리스트 관우의 배틀팀 데뷔 스토리는 완전 이거지요.
(대전 감사합니다 3권의 내용)

연재 1회에 있는 투니버스 인터뷰에 찍힌 시선집중 태수형(오른)과 시선집중 양남원(왼)의 모습.
2회 대회(96)때 저는 남원이의 매츄어에 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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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분야도 아닌 버파에 철권으로 이야기를 뻗어가다가 간신히 고삐를 틀어쥐고 마무리했네요;;;

4회부터는 킹오파 이야기만 하겠습니다.(꾸벅)


덧) 자료 조사하다 보여서... 
게임라인 1997년 9월호
(나우누리. 철권팀. 2P코인. 신의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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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우누리가 별풍선 쏘는 아프리카TV가 되면서 다 날아갔다. 

[2] 게임챔프 창간호부터 볼 수 있는 곳.

https://www.gamemeca.com/magazine/?mgz=gamechamp

[3] 당시에는 2개월 뒤의 제호를 찍어서 발행했는데, 이걸 1개월로 줄이는 과정, 잡지사들 대통합으로 이뤄낸 이야기가 게이머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한국 게임잡지 실록” 연재로 실렸다. 이 실록만 모아서 전자책으로 나와도 좋을 텐데.

https://x.com/krucef/status/1293511045374291974  



TMI: 영화 반칙왕. 송강호가 프로레슬링 체육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망설이는 장면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교동 오락실. 97 때 제 아지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