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1일 화요일

원스 어폰 어 타임 in 킹오파 (5회)

Do It Yourself

 

이 이미지는 워크라이프 출판사의 ‘드래곤볼 깊이 읽기’ 뒷날개에 쓴 번역자 소개 부분이고, 세상에 던지는 내 출사표였다.

출판사를 세우고 첫 책에, 애초 계획에도 없던 번역자로 나서면서, 세상에 자신을 소개할 때 뭐라고 정의해야 하나 반추하다 떠오른 문장이

‘없으면 내가 만든다’는 D.I.Y. 정신을 본받아였다.


고3 때이자 킹오파96 시절.

3회 글에도 있듯이 당시는 일본에서 시작된 팀배틀이라는 문화가 핫했고, 친구 백자ㅇ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했으나 슈퍼 부끄럼쟁이였던 녀석은 거절. 나는 PC통신에 글을 쓴다.

그 글을 보고 이후에 A-TEAM이 되는 세 친구, 상준, 어색, 영기와 만난다.(전수는 조금 후 합류.)

그해 수능은 11월 13일이었다.

그전까지 시간을 쪼개서 도장 깨기도 다니고... 대방동이 잘한다고 해서 갔다가 46연승하고 허망하게 돌아온 기억. 우연히 들어간 청담동 LG오락실에서 조영욱형을 발굴한 사건 등등... A-TEAM 친구들과 오지게도 놀았다.

당시 나는 내가 꽤 한다고 생각했다. 그 실력을 뽐내고 싶지만 자리가 없었다.

아랑전설2 시절. (자료를 뒤지니 일본에서 가동일이 1992년 12월 10일이라고 하니 우리나라는 1993년, 중3 때이리라.) ‘겜통’이라는 잡지사에서 ‘아랑전설2’ 대회를 코엑스에서 개최했다. 학교 끝나고 후다닥 갔지만 이미 모든 차례가 끝나고, 현장에는 ‘예쁜 엽서 대회’로 아랑전설 캐릭터를 그려서 응모한 흔적만 있었다.

그 기억(원통함?)으로 그냥 대회를 만들었다.

이게 1회 대회다.

당시 주변에서 가장 컸던 ‘개포동 챔피언 오락실’로 장소를 정했고, 오락실 사장님께 딜을 쳤다. 그날 사람 많이 올 테니 96 기계 좀 더 들여 놓아주세요.(기존 2대에서 1대 늘어난 3대로 진행). 예선과 본선 이틀 동안 진행했고, 예선에 100명가량의 사람이 왔다. 오락실 아저씨의 신이 난 얼굴, 본선인 2일 차에는 20명 정도밖에 없어서 풀이 죽었던 얼굴이 기억난다.

‘화제 현장의 괴력’ 같은 일은 없었다. 상준이의 번개를 꺾고 올라갔지만 어색이의 장거한에게 패하고 2등으로 마무리.

1회 대회의 우승 상품은 100원이었다. ‘당신이 우리나라 킹오파 96 1인자입니다’라는 의미를 담아 100원을 주었다.


모여서 놀아보니 재미있었다. 사람들은 팀을 만들기 시작했고, 주말마다 오락실에 모여 배틀을 했다.

개학이 다가오고,

마지막을 크게 장식하고 싶었다.

게임 잡지사를 돌며 “저희 대회하는데, 상품 협찬 좀 해주세요”를 시작했다.

게임매거진의 최수만 팀장님이 “그래? 그럼 빅에이에 가자”라면서 자가용에 태워 김갑환 회장님 집무실로 데려다주셨다.

(빅에이는 유통사, 빅콤은 개발사다.)

1회 대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기에, 더 큰 장소에서 더 많은 기판(1회 때 3대로 진행해서 진행 속도가 느렸다)을 준비하고 싶었고, 김갑환 회장님은 종로의 네오지오랜드를 대회 장소로 내주셨다.

당시 대유행이었던 UFO캐처의 ‘SNK 캐릭터 열쇠고리’도 상품으로 몇 박스 주셨다(참가자 기념품으로 증정함).

청소년들에게 팔리는 상품이 뭔지 젊은 감각으로 캐치하고 계셨던 회장님과 여러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더니, 고작 고3이었던 나는 분위기 파악 못 하고 까불었다. 회장님 집무실 벽에 걸려 있던 2미터 사이즈의 마이 시라누이 포스터를 가리키며 “저것도 주시면 안 될까요” 했다가, 집무실 상단에 걸려 있던 일본도로 일도양단 되는 게 아닐까 망상할 정도로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나중에 들으니 (나무위키에 쓰여 있는 것처럼) 과거에는 무서운 분이셨다고.

회장실에서 나와 달봉형과 종로 네오지오랜드로 직행.

실망이었다. 너무 작았다. 1회 대회장의 반의반도 안 되는 사이즈였다.

다음날 다시 찾아가 사정을 말씀드리자, 그러면 오금동의 네오지오랜드가 크다고 그쪽으로 준비를 해주시겠다고 흔쾌히 바꿔주셨다. (이 대회장에서 97 발매 후 3회 대회도 치렀다. 투니버스에서 취재를 나왔던 그 장소다.)


(일본의 네오지오월드)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56965388

https://battlepage.com/??=kof.talkforkof.view&no=13661


대학에 들어갔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당시 나우누리의 VG(비디오게이머) 게시판은 3D 대전격투와 2D 대전격투 게시판이 나뉘어 있기는 했지만, 게시판에서 너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기는 분위기상 그렇고, 소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VG동 운영진에게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고, 1997년 4월 1일에 임시 소모임이 되었다. 활동이 많아야 정식 소모임으로 승격된다는 당부도 들었다.

매일 전산실의 터미널실에 처박혀서 PC통신만 했다. 1학기에 학고를 맞았다. 2학기에는 한번도 출석한 적이 없다. 투고 받고 군대 갔다와서 이 학교를 자퇴할 생각이었다. 학교에 정을 못 붙였다.(복학하고 8학기만에 졸업하긴 했다. 실질적으로는 6학기만 다닌 셈이라 고생했다. 다 자업자득이지 뭐;;;)

4월에 만들어진 임시 소모임이 5월 중순에 정식 소모임으로 승격되었다. GO VG 8 8. SNK사랑모임의 탄생이었다.(배틀페이지 같은 곳이다)

초반에 폭발적으로 활동해서 빠르게 승격됐다고 운영진이 말했다.



이 경험으로 후에 ‘출판사 옆 대나무숲’이 생겼을 때, 초반 트윗 100개 중에 50개는 내가 쓴 글이다. 초반 화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출대숲은 출판사X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계정이다.

나는 출판사X(ㄷㅅ)에 면접을 보러 간 적도 있고, 출대숲은 당시 다니던 출판사 뒤에 앉아 있는 후배가 시작한 프로젝트다. 한겨레 인터뷰는 같이 가서 했다. 후배에게도 초반 100개 중 50개는 내가 썼다고 말하지 않은 상태였고, 기자 앞에서 처음 이야기한 부분이다.

당시 다니는 그 회사가 얼마나 ㅈ같았으면 후배는 출대숲을 만들고, 나는 초반 점유율 50%를 차지했을까. 그렇게 봐줬으면 한다. 자작이나 조작은 아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043.html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556841.html

대나무숲의 여파는 어마어마해서 이후 각종 직종의 대숲이 만들어졌고, 무한도전에서도 대나무숲 특집(300회)을 했다.

이후 만들어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탄생에도 약간은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후배는 출대숲만 만들고, 이렇게 수익화로 이어 나가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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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PC통신 동호회에서는 손에 잡히는, 물성이 있는 기념품을 만드는 유행이 있었다. 애니동 쪽에서는 자료실에 넘쳐나던 애니메이션의 OP, ED 모음집 CD SET을 만들기도 했다. 대의명분은 그동안 활동한 게시판 글의 갈무리 보존이었지만, 떡고물인 MP3 CD가 워낙 강력했다.
우리도 했다.
당시 출판 만화잡지에 연재를 하면서 엑스트라로 게임 캐릭터를 장난스럽게 등장시키는 만화가들이 있었다. 손희준씨와 유현씨가 대표적이었는데, 당시의 손희준씨는 SD캐릭터를 주로 그려서 유현씨에게 연락해 이러저러한 제안을 했다.
티셔츠는 쉐인이라는 비싼 청바지 브랜드의 품질 좋은 공장에서 제작했다.
(지금도 보존하고 있다. 추억은 소중히!)

우리 모임 사람들은 이 티셔츠를 입고 거평 프레아에서 열린 97 대회에 참가했고, 어느 부스에서 살 수 있냐는 문의를 많이 받았다.

게임챔프 1997년 9월호

게임매거진 1997년 9월호

일본 SNK가 주관했던 동대문 97 대회장의 입구에서, 카운터를 손에 들고 입장객 수를 체크하는 일을 했다. 빅에이의 어르신들이 “와서 도와”라고 하셨고, 점심으로 갈비탕 식권을 주셨다. 입장객 수는 하루에 1만명은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게임라인에서 한국 팀배틀 역사 1회. 버파 편이라는 코너를 본다. 2회는 철권이라는 예고도 있었다.
그날부터 PC통신에서 잠복에 들어갔다. 명령어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예를 들어 WHERE 게임라인 같은 명령어를 치면 현재 그 아이디가 접속 상태인지 아닌지 알려주었다. 며칠 잠복하다가 온라인 상태를 확인하고 메시지를 보낸다.
안병수 기자님과 대화할 수 있을까요.
3회는 킹오파로 하시는 게 어떨까요.
제가 쓸 수 있습니다.
OK라는 답을 듣고 머리 속으로만 구성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온 연락.
철권 편 펑크났습니다.
킹오파 편 써서 주세요.
마감 급합니다.
이틀 만에 후다닥 작성해서 넘기고, 나중에 인쇄된 결과물을 봤더니 역시 미진한 부분이 많다. 특히 (2번의 배틀에 주재명은 참가하지 않았다)라고 인쇄된 문장은, 원고에는 (2번의 배틀에 주재명은 참가하지 않았다. ^_^;;;) 라고 써서 보냈고, 당시 통신 문법상 농담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으니, 당연히 담당 기자님이 괄호 부분은 통으로 삭제 후 내보내실 줄 알았다. 기자님에게만 던지는 농담이었으니... 다음달 기획(배틀팀 연락처 소개)으로 소통하면서 왜 이모티콘만 삭제하고 내보내셨냐고 물어보니, 그게 더 재미있잖아요^_^라는 답을 들었다;;;;;;;;;;

삽화를 그린 태풍이는 어색이의 고등학교 1년 후배다. 같은 만화부 소속이었고, 동네 오락실에서 어색이의 엄지 손가락 연타를 직관하던 목격자다. 그림에 그려진 손목 부분의 장치는 진동팩으로, 닌64 컨트롤러에 장착하는 형태의 주변기기다. 후대의 사람은 이해 못할 개그라 첨언.

96을 묘사하면서 95 캐릭터인 사이슈가 등장하고, 이마에는 황이라고 써 있는데, 역시 1년 선배인 황준식군을 붕붕 돌려버리고 싶은 태풍이의 속내가 아니었을까 망상한다.


이 꼭지와 다음 달의 꼭지까지 총 3P를 작성했고, 원고료를 세 달 정도 받지 못했다. 속 사정은 게이머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한국 게임잡지 실록”에 실려있다. 이 당시 게임라인은 웅진 소속이었다.

30대 시절에 리더스북(웅진 대표 임프린트)에 면접을 갔는데, 건물이 너무 익숙하다. 묻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돌면 화장실이 있고 등등 다 알고 있다. 처음 오는 곳인데 이거 뭐지? 하는 기분을 한동안 품고 지냈다.(가메리네 시절에 티셔츠 들고 찾아간 사진이 있더라.)




동대문 97 대회는 대한민국에 97이 정식으로 들어오기 전에 열렸던 이벤트 매치다. 96 실력으로 겨룬 대회라고 해야 맞다. 그럼 97에서 시스템도 바뀌고 했으니 정식으로 1짱을 가려야지.

겨울에 3회 대회를 열었다. 빅에이 협조로 2회 대회를 열었던 그 공간이고, 투니버스에서 취재도 나왔다.

이 영상은 ‘PC통신에 올릴 겁니다, 복사본이 필요합니다’라고 요청해서 당시 담당 PD님이 직접 VHS 테이프에 본을 떠주신 영상이다. 투니버스 본사로 찾아갔고, 그 자리에서 공략 비디오 사업 제안도 받았다. 당시 버파, 철권은 공략 비디오를 제작해서 판매하기도 했는데, 킹오파도 이걸 하자는 제안이었다.

각 캐릭터 고수 목록이 머릿속에 스쳐 갔지만, 나는 ‘100원짜리 게임 하는 사람들은 돈이 없어요’라면서 거절했다. 당시 게임비도 비쌌던 버파, 철권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대학생이었고, 금전적으로 부담이 덜하니 공략 비디오 같은 상품을 살 여력도 있었다. 하지만 킹오파는 아직 도시락 가방 들고 다니던 사람들 위주로 즐기는 게임이었고, 그들이 비디오를 살 여력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괜히 이런 일 벌이다 PD님 문책 당하면... 이라는 생각이었는데, 돌이켜보니 비디오 대여점 위주로 유통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작은 후회는 있다.


이 영상 속 나에 대해 부연 설명을 조금 하자면,

취재진 도착 3분 전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 인터뷰는 2트째 성공한 영상이고, 1트는 게임장 밖, 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찍었다. 프롬프트도 없고, 질문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 자, 찍습니다, 한 후에 질문해서 어버버했던 기억이 난다.

그림이 안 이뻤는지 취재진이 들어가서 다시 찍자고 하고, 오락실 지하로 계단 내려가면서 멘트 계속 생각하고, 슛 들어간 후 잊지 않으려고 말하다 중간에 한 번 절고, 마지막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데, 해냈어. 이 긴말을 즉석에서 떠올렸어. 하면서 혼자 흐뭇해 하는 장면이다.


마지막에 붙은 어색-명상의 대전 영상은 다음날 추가로 찍어서 붙인 것이다. 그림이 밋밋해서 추가로 찍었나 본데, 케이블에서 방영할 당시에도 저걸 왜 찍었니 싶은 대전 내용이다. 그냥 화려해 보이는 거 많이 보여달라고 해서 초필 위주로 시연했다고 한다.

이날도 RMS 명상이의 전설.

절대 100원을 안 넣음.

뒤에서 취재진들이 다 기다리고 있는데, 어색이가 100원 넣어 줄 때까지 계속 기다림.

어색 : 야. 진 사람이 100원 넣는 건 국룰 아니냐?

명상 : 응 아니야. 형이 내는 거야.

당시의 배틀은 그런 정겨움이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미디어의 파급력을 느꼈기에

우노 츠네히로상이 방한할 때, 처음부터 미디어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93541

인터뷰 독점으로 할 매체 구상하고, 씨네21에 연락하고, 보도자료 준비하느라 며칠 고심하고 등등의 이야기는 원스 어폰 어 타임 in 워크라이프 부분에서 썰을 풀어보자.

(이 행사는 서울시에서 주관했고, 박인하 교수님이 좌장을 맡았다. 누구를 초청할 것인가 고민할 때 교수님 세미나 소속이었던 강현/강깊은씨가 우노상을 추천했고, 우노상과 연락이 원활하지 않던 서울시가 워크라이프에 도움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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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2월 군번으로 입대했다.

게임 그런 거 해서 무슨 도움이 되냐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내무반 바로 위 고참이 게이머였다. 내 명찰을 보더니 너 미친이리냐고 물었고, 나도 그 고참의 아이디를 떠올리며 본인 확인을 했다. 덕분에 내리갈굼 이벤트가 발생해도 “재명아, 앞으로 잘하자” 한마디로 정리됐다.

맞선임이 막내이던 시절, 밖에서 뭐하다 왔냐는 왕고의 물음에 “게임하다 왔습니다”라고 답하고, “해 봐”라는 말에 이문정주, 도산붕추 같은 시범을 보였단다. 덕분에 나는 “너도 게임하다 왔냐”라는 말만 듣고 재미 없는 놈이라는 꼬리표를 받고 넘어갔다.




지금까지 꺼드럭대며(요즘 유행어. 거들먹거리다) 글을 썼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맞아, 저 형이 그랬지, 저 녀석이 그 이벤트 열었지 같은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대부분 달봉형과 함께 한 일이다. 달봉형이 옆구리 찌르면 내가 돌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1회 대회에서 내가 한 일이 10, 달봉형이 0이라면

2회 대회는 나 2에 달봉형 8.

티셔츠 제작은 나 1에 달봉형 9.

거평 97 대회에서 입장객 카운터 셌던 일은 달봉형이 화장실 갈 때 30분 정도 교대 해준 일.

3회 대회는 나 0.1에 달봉형 9.9다.

앞에 나서기 싫다고 나한테 얼굴마담을 시킨 일이 많다. 인터뷰도 원래 달봉형의 몫이다.

결국 사관이 누구냐에 따라 후대의 기록이 달라질 것이다.

나같은 사관이 증언하지 않으면 후대에는 묻힐 인물이다. 가만두면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놀던 판을 깔고, 자비를 들여서 여러 준비도 했는데...

2회 대회(96)부터 원활한 진행을 위해 대회장에 사비를 들여 마이크와 앰프를 설치했다. 이번에 누구 대전할 차례니 몇 번 기계 앞으로 나오라는 방송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대회장이 워낙 시끄러웠고, 누가 앰프의 볼륨을 높여서, 결국 몇 번 쓰지도 못하고 퍽 나갔다. 그 수리비까지 지출했다.

티셔츠를 만들 때도 업체와 여러 번 미팅하고, 그 과정에서 지출이 상당했다. 큰 업체는 물량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되어야 일을 하니, 달봉형이 그 비용을 다 부담했다. 나는 온라인에서 애니동 사람들과 쌈박질이나 하고;;;(유현씨 그림 사용 문제였다)

말을 안 하니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 연재의 취지가 ‘달봉형 귀한 줄 알아라’인 이유이기도 하다.


커뮤니티 주최로 여는 마지막 대회였던 4회 대회. 99부터는 게임 ㅈ같다고 달봉형이 흥미를 잃었다.

왼쪽이 달봉형, 오른쪽이 게이머즈 기자로 활동했던 나리디 승민이.
달봉형은 당시 불던 벤처 붐에 올라타 게임회사를 만들었고, 현재는 게임과 관련 없는 회사에서 선임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2026년 8월 8일 토요일

원스 어폰 어 타임 in 킹오파 (4-1회)

패러디

마블 투혼이라고 이제 막 나온 게임이 있습니다.

여기 데드풀이 제4의 벽을 허무는 캐릭터 답게 온갖 패러디가 잔뜩 나오는데



예전에 아래 글 쓰면서 놀았던 사람으로서 
영상이 재미있어서 같이 보자고 가지고 왔습니다.

게이머즈 2000년 11월호에 썼던 특집



2004년 2월에는 이러고 놀았네요.
지금은 사라진 블로그인이라는 곳에 썼던 거 같은데...


이런 거 좋아하던 20대가 자라 30대에 출판사 차려서 덕덕한 각주 달아서 내고... 뭐 인생이 그런 거지요.

2026년 8월 7일 금요일

원스 어폰 어 타임 in 킹오파 (4회)

나 최영의야. 그러고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 - 96 무한이라 불리는 기술들

킹오파 96이 어떤 게임이었는지, 예전에 즐기셨던 분은 기억을 더듬는데 도움 되시라고 영상 몇 개 가져왔습니다.

고수로 검색해서 나오는 것들과 알고리즘으로 뜨는 영상들을 꽤 봤는데, 96이 워낙 입력이 빡빡한 게임이라, 어이없는 순간에 콤보가 끊기거나 서로 1대만 때리고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순간들이 좀 보이더군요. 97, 98은 그렇게 외계인처럼 하는 중국인들이 96만 딱히 못할 이유는 없잖아요? 96이 입력이 좀 그렇습니다.

무한설풍 OK가 되면 게임이 얼마나 허망하게 끝나는가의 예시.

기스가 어퍼를 쓰는데 96 때 어퍼 금지 같은 건 없었습니다.
금지와 허용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길게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무한설풍만 없고 지뢰진 버그 추가타와 가드 유지, 다단히트는 OK인 배틀.


가드 유지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 커맨드잡기에 잡히지 않는 특성을 활용하여 커잡 캐릭터를 바보로 만드는 기술인데, 96 당시에는 존재를 몰랐던 걸로 기억합니다. (RMS는 알았는데 제 머리에만 없는 건지.) 

무하마드 알리의 가드 유지(마지막의 댄스까지 봐야 찐)

당시에는 무한 잡기(실제로 무한 아님)라는 선입력 잡기가 화두였지요.
"유 존슨? 나 최영의야. 그러고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
커맨드 한 번만 입력하면 화면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걸어가는 동안 범위 안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잡힌다. 이런 이미지로 게시판을 통해 퍼졌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무위키 선입력 킹오파96 부분 설명에 있듯이, 몇 프레임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과 96의 커맨드잡기에 실패 모션이 없어서(98에 생김) 생기는 오해인데, 실제로는 물 위에 떠있는 백조의 발처럼 계속 입력을 해야 합니다.
나는 한번만 입력하고, 상대는 뭐 내밀거나 움찔하기만 하면 잡기 범위 안에 들어오는 순간 무조건 잡히는 무한 잡기라는 식으로 퍼져서, 게시판 글만 보고 시범을 보지 못한 지방의 겜돌이들이 많이 물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R.M.S. 류명상군이 찾아냈습니다.
이걸 금지니 어쩌니 할 때 문제는, 뒤로 두바퀴 계열의 고로 초필 잡기 같은 경우. 선입력과 버튼 유지로 계속 빨빨거리며 입력을 하면서 뒤로 갈 때(방어가 자동으로 됨), 그 범위 안으로 조심성 없이 발을 들일 때 훅 딸려 올라가는 경우. 이게 선입력인지, 보고 잡은 건지 판정할 수 있냐는 거지요. 잡지 글에 애매하게 써 있는데, 양심에 맞기는 수밖에...

다단히트는 모든 캐릭터, 모든 기본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R.M.S. 류명상군이 찾아냈습니다.
이 테크닉도 배틀에서 금지였던 기억은 없습니다. 기가 없을 때만 한정으로 할 수 있는 비기고, 손이 무지하게 빨라야 2~3히트를 넣은 후 연속기를 넣을 수 있는데, 그거 신경 쓰다가 기회 놓치고...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 좋은 구경 좀 하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 하는 거 보니, 단축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살벌하게 하는 군요. 그 당시 빨간색 츄파춥스 조이스틱, 어디 알카노이드(벽돌 깨기)나 해야 할 거 같은 그런 환경에서 게임하던 우리와, 최근의 4각 8각 산와 세이미츠 그런 장비는 격이 다르기도 하구요.

TMI: 요즘 삼덕사 레버로 불리는 그 모양의 스틱은, 96 당시에는 퍼지는 중이었다. 여전히 츄파춥스 모양인 곳도 있고, 외형은 연두색 삼덕사여도 하단에 4각, 8각 가이드 없이 동글뱅이로 기술 입력 받는 기기 등 각양각색이었다. 배틀은 레버 반응 좋고, 주인아저씨가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오락실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 오락실 원정 다니다 네오지오 원 아케이드 기기가 있는 곳에서 A B C D 일자 키 배열에 또각또각 돌아가는 레버로 게임을 하는 날은 감격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사람마다 달라서 동글이가 아니면 기술이 안 나간다는 사람도 있긴 했다. 당시와 이후를 비유하면, 이후의 4각이니 8각이니 하는 시대로 넘어간 장비는 기계식 키보드, 당시는 이게 눌린 건지 안 눌린 건지 감도 잘 안 오는 멤브레인 키보드의 시대다. 그때의 눈으로 지금 중국인들의 96 플레이(경험치가 30년)를 봐도, 한국 배틀인들이 못 이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 갤주가 중국 다녀왔던 시절(2007년)의 글을 보면, 레버와 버튼이 압도적으로 좋다는 내용이 있다.


킹오파의 무한 콤보 모음. 3분 53초부터 96입니다. 즉사기 내지는 한방 콤보가 적절하겠네요.


크라우저 플레이 영상. 가드 유지해도 위아래로 흔들어서 잡을 방법은 다 있습니다.

96의 잡기 거리에 대한 영상. 당시 우리는 연속기라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손 끝에라도 살짝 걸리면 2타가 잡기로 들어가는 연속기.

1회 글에 있던, 갤주가 장거한 버그 무한이라고 말하던 기술

아래 영상 10분 28초 같은 상황에서 
장거한에게 번번이 잡혀서 졌다 같은 말을 하고 싶은가 본데,
어색이의 손이 그렇게 성공률이 높지 않습니다. 클락 알젠틴 후 추가타 성공률 50% 이하. 이오리 아오이 3단 전타 성공시키려면(이 말 자체가 웃기지 않나?) 기계가 반대편까지 들썩들썩할 정도. 이런 언밸런스함(국내 1위라는 사람이 뭐 저래)에 대한 증언도 찾아보면 잔뜩 나옵니다.

버그 잡기를 “이것도 실력이야” 같은 말을 했다는 건 갤주의 상상이고, 어색이라면 “너도 해. 장거한 좋아.”겠지요.
그를 옆에서 오랫동안 본 우리에게는 그냥 어색이 럭키 뽀록이 터졌구나인데, 상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하필 그때 잡기가 성공해 버려서,
구석에 몰리면 그냥 죽는구나, 무한 똥창이구나, 구를까? 기다릴까? ABCD로 철구 멈추는 순간 반격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면서 허상과 싸운듯.
어색이가 잘 하는 건 심리. 그것도 당하는 사람이 "아오 ㅆ 내가 저런 거에 당하다니" 싶은 정도로 당하고 나면 자괴감 드는 심리.

우리 친구들이 봤을 때 구석 잡기는 그냥 이거인데.
체커(사포 SIN)
분명 부스터 다 썼는데 갑자기 하나 더 있대. 뭐야 이 럭키 뽀록은?
(요즘은 AI가 승리에 집착해 세이프티도 다 풀어버리고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행동한 결과(이후 폐차 수준 됨) + 슬립스트림으로 달려서 세이브된 에너지가 있음 등등 상세한 분석이 많던데, OVA 하나씩 나올 때 실시간으로 보던 우리에게는 그냥 카가 이기게 하려고 마지막에 던진 데우스엑스마키나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후대의 설명이 더 멋있긴 함.)

상준이 번개는 이 수준으로 못했음. 97에는 이 수준까지 오르긴 함.

근데 자료 조사하다 보니 저런 헛소문이 퍼진 게 반은 제 탓이더군요.

어색이가 버그 잡기를 쓸 줄 안다는 게 1회 대회 시기에 써 있어서, 저걸로 1짱 먹었다고 오해하는데...
(저 글은 97 출시 후에, 1997년 10월쯤에 작성된 글)
1회 대회 때는 버그 잡기 같은 거의 존재를 몰랐고,
1회 대회에 참가했던 R.M.S 류명상군이 뒷풀이 때 “형, 이런 것도 있어”라면서 전파한 것. 그 뒤로 연습을 했다고 해도 하드웨어가 명상이가 아니고 어색이인데...(96 당시 배틀했던 사람들은 이 문장으로 끝일텐데. 더이상 설명하기도 잡스럽다.)



이쯤되면 주구장창 나오는 저 R.M.S.라는 사람에 대해 써야 하지 않을까.

게임매거진 1998년 9월호. 아수라팀 소개글.
게임매거진 1998년 12월호에 실린 아수라 입상 소식


RMS를 소개하기 위해 이 긴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한때 유행어였던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이 말이 당시의 그를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실시간으로 흥미(집중력)가 식어가는 게 모니터 너머로도 보인다.
‘대전 감사합니다’에도 잘 표현되어 있는데, 백마디 말보다 한번 대전하는 게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다.

김응용 감독의 “투수는 선동열이 제일 잘하고, 타자는 이승엽이 제일 잘하고, 야구는 이종범이 제일 잘한다.”는 말이 유명한데,
명상이는 GAME을 잘했다.
누가 1등이고, 누가 무슨 캐릭터 장인이고...
명상이 앞에서는 다 부질 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약점은 있었고,
건담의 토미노 감독은 “미혹을 떨쳐 버린 샤아는 아무로도 순삭이다.”라는 인터뷰를 하는데,
팬들은 미혹을 버린 샤아는 샤아가 아니라고 이해한다.
이 인터뷰를 보면서 RMS가 생각났다.
RMS가 지존으로 군림하는 세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지한 RMS는 RMS가 아니다.
.
.
.
그래도 인물상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건 어떤가. 
RMS는 미드 프렌즈의 조이다.
조이는 여자를 쉽게 꼬시지만 그 관계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RMS의 플레이는 놀랍지만 진심 모드의 유지 시간이 짧다.

97 때 아키라꼬마가 우리 팀에서 같이 놀던 시기가 있다.
당시 그의 쿄 플레이는 놀라웠는데
점프 강킥 - 지상 강공격 - 물기 시리즈가 기본이라면, 아키라꼬마는 상대를 구석으로 몰고 역가드 점프 공격 - (상대가 히트백으로 뒤로 밀릴 때) 백점프 나락 - 지상 강공격 - 물기 시리즈를 97 때 처음으로 고안해서 사용했다.
누가 만든 연속기를 눈으로 보고 따라하는 건 쉽다. 처음부터 고안해서 쓰려면 독자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아키라꼬마가 게임 안의 특정 캐릭터를 빈 공간이 없게, 전부 까만 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파는 스타일이라면
RMS의 흥미는 빨간색 영역에 있다. 

2026년 8월 6일 목요일

원스 어폰 어 타임 in 킹오파 (3회)

선생님, 진도 나가요!


미려한 그래픽의 94는 이전의 네오지오 대전격투 게임들과도, 이후의 킹오파와도 달라서 이질적인데 사실은 아이렘에서 이적한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거나

그나마 상식적이었던 캡콤의 뱀파이어와 달리 흉악한 가드캔슬로 악명이 높았던 95라거나

최번개가 나이트메어의 프레디에서 따왔다는 건 유명하지만

장거한이 마블 업소빙맨에서 따온 건 잘 모른다거나 (첫 등장. 1965년)

96의 이 한국팀 배경이 실제로 있는 곳인지 모른다거나 (수원 화성)

여기까지 간 김에 이곳도 꼭 가봐야 한다거나

그런 농담이나 하고 싶은데

진도 나가야겠죠?

#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의 취지는

"스타 플레이어만 추앙하지 말고, 판 깔아주고 뒤에서 서포트하는 사람들의 노고도 기억하자"였고(예를 들면 팀 스리핏제로처럼)

부제는 "달봉이형 귀한 줄 알아라"였는데... 갤주를 만나면서 방향을 잃고 이제는 마음대로 가고 있습니다.

연재를 마칠 때 과연 처음 목표로 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지 슬슬 걱정이 됩니다.



팀배틀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일본에서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지요.

당시 발행되던 게임 잡지들을 통해 붕붕마루니, 신주쿠잭키니, 이케부쿠로사라니 그런 이름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둘 배틀팀을 만들었고, PC통신을 통해 팀을 홍보하고 서로 교류하며 배틀을 했습니다.

(링크된 글 꼭 읽어보시길. 미학에 대한 집착을 이해해야 당시 배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PC통신 갈무리가 있다면 좋겠지만 이제는 어디서 찾아보기 힘든 고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고,[1] 잡지로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 살펴봐야죠.

게임챔프 1997년 5월호 아케이드 섹션의 팀배틀 기사를 보면,[2]

“이달의 팀배틀 소식통에서는 팀배틀의 원조인 일본의 팀배틀 대회에 대해 알아본다. 일본에서 가장 전통있는(비록 4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팀배틀 대회인 ‘아테나 배’와 신주쿠 잭키, 붐붐마루, 등 팀 배틀 스타들의 활약상에 대해서도 살펴본다.”라는 인트로로 시작하고,

주요 부분을 요약하자면


1994년 12월 3일 1회 대회.

“버파2가 출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최된 대회”

“팀 배틀사에 기억될 만한 아테나 배 제1회 대회”

“대회를 제패한 팀은 (...) 게메스트의 공략진들로 구성된 철인 캐사오가 이끄는 ‘게메스트 팀’이었다.”


1995년 3월 21일 2회 대회

“아테나 배의 소문이 널리 퍼져 관동 지방 플레이어들이 모여 개최된 제2회 대회”

“사천왕 라우, 신주쿠 잭키, 붐붐마루, 카시와 제프리, 이케부쿠로 사라 등도 이때부터 그들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회 대회 때부터 대회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 대회 때부터 일본의 팀배틀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995년 11월 23일 4회 대회

“대회장도 롯본기로 옮겨졌고, 예선과 본선을 각각 다른 날에 치르는 등 대회 규모가 확대되었다. 참가 팀은 관동 지방, 쿄토 이외에 오사카 팀도 출전했다. 4회 대회는 이로써 명실상부한 일본 전국 팀배틀 대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96년 3월 31일 5회 대회

“최초로 5인제를 채용한 대회. 시기적으로 버파2가 발매되고 상당히 시간이 흘렀을 때였기에 (...) 갖가지 얍삽이가 속출. 울프의 하단 50만 펀치 연타는 유명한 일화. 승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비난을 받았다.”


1996년 11월 17일 6회 대회.

“버파3로의 첫번째 아테나 배. 다시 3인제 방식이 채택.”


이런 식으로 바다 건너의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그리고 잡지사가 직접 대회를 주최하기도 하는데

팀배틀이라는 영역을 다루면서 잡지에 소개되는 게임은 주로 버파와 철권. 2D 쪽은 소외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데, 제가 모르는 부분이 있었다면 추후에 추가하겠습니다.)

그러다 게임라인에도 팀배틀 익스프레스라는 코너가 생기고(1997년 8월호), 2D도 소개가 됩니다.

97년 8월호라고 찍어서 발행했지만 실제로 시중에 유통되는 시기는 6월입니다.[3] 그래서 킹오파96 배틀팀으로 적혀 있습니다. 97은 아직 발매 전입니다. 2페이지로 전국에 있는 배틀팀을 소개하는데, 킹오파는 서울의 타나토스, 패러딘, 필승, 아수라, A-TEAM만 나열되어 있습니다.

당시를 알던 사람으로서 첨언하자면, 담당인 안 기자님이 PC통신(주로 하이텔)에서 배틀팀 이름 수집해서 쓴 꼭지로 추정됩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타나토스는 대방동 중심으로 활동하던 팀인데, 대방은 당시 버파의 성지였고, 안 기자님이 버파를 애정했지요. 패러딘은 기억나지 않고, 필승과 아수라는 2026년 8월 현재에도 제 단톡방 멤버네요. A-TEAM은 이 글을 쓰는 저고.

그외 지역을 알 수 없는 배틀팀이라고 소개된 부분.
금메달리스트 관우의 H.I는 사쇼4 배틀팀으로 올라가 있습니다(사쇼도 하긴 했지요. 주력은 킹오파였지만.). 타나토스는 중복으로 또 들어가 있고. 사쇼4는 위에, 아래 두 곳인데, 이 리스트 대체 뭘까요? (킹오파에 있는 설풍 팀. 96 당시 2위였던 팀입니다.)

이렇게 좀 체계 없이 엉망이라, 1998년 1월호에는 안 기자님의 요청으로 제가 각 팀의 정보를 팀장들에게 직접 써달라고 해서 취합, 잡지사로 전달했습니다.
이 페이지의 목적은 "우리 동네에서 배틀팀에 가입하고 싶은 사람은 이쪽 삐삐 번호로 연락하거나, 우리 아지트 오락실로 찾아오세요"였습니다. 그런데 80% 정도의 팀이 신입을 안 받겠다고 해서 의미가 퇴색되었지요.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데이터이겠지만, 저 당시 배틀계에서 활동하고 그 이름들을 추억하는 분들을 위해 세밀하게 올려 봅니다.(팀 소개 순서는 메일 받은 순이었습니다.)(이미지는 누르면 커짐)

당시 팀배틀이라는 신 문화를 접하고 싶은 게이머들이 많았고, 잡지(게임챔프 1997년 5월호)에 실린 세 명의 증언을 봐도 그렇지요. 동네에서 친구들이랑 게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열망이 보입니다.



그런 요청이 많았는지 게임라인 1997년 11월호 팀배틀 익스프레스에 배틀하는 법에 대해 소개가 됩니다.
이제는 꼭 기존 팀에 들어가지 않아도 친구들끼리 팀을 만들 수도 있겠지요?
당시의 풍경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니 상세히 봅시다.
배틀이 주로 이루어지는 오락실에서는 종이컵에 동전 잔뜩 넣어서 기계 위에 올려놓으면 지금 배틀 중이라는 표시였는데, 동네 아무 오락실에서나 그러면 "전세 냈냐" 소리 들었지요. 그럴 때는 그냥 동전을 잔뜩 넣었습니다. 대기 코인이 5~10개가 넘어가면 기다리기 싫어서 보통 다른 기계로 가지요. 물론 아무 오락실에서나 이런 짓을 하지는 않고, 96이 2, 3대 돌아가는 곳에서만 했습니다. 배틀을 하면 기계 하나를 독점으로 쓰게 되고, 그러면 그 동네 게이머들은 그 날은 게임을 하기 힘들어지니까요.
킹오파 배틀 초기에는 40선승이었습니다. 박빙으로 가면 80판을 해야 하니 너무 길었고, 97부터는 30선승으로 줄었습니다.

킹오파는 팀배틀을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달랐기에, 버파, 철권과는 배틀 방식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말하고 싶어서 길게 인용했는데 당시 배틀에는 정(情)이 있었지요.

한국 팀배틀 역사 1회. 버파 편을 썼던, 버파3 배틀팀 토네이도 팀장님의 글에도 이 부분을 지적하고

한국 팀배틀 역사 2회. 킹오파 편을 쓰며 저도 이 부분을 말했습니다.

뒤로 갈수록 배틀을 즐기기 위한 툴(Tool)이 아니라 이기기 위한 무언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초창기의 문화는 그게 아니었는데...

초창기, 특히 킹오파96의 경우 바람직한 팀배틀 문화가 정착될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했던 팀이 시선집중. 그 팀장이었던 곰치(이문종)형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게임매거진 기자로 활동하셨고.
형에 대한 회고들을 보면 밥을 얻어 먹었다는 기록이 많은데, 그렇게 이 판을 만드셨지요.
TMI: 나우누리 아이디가 곰치77이었다. 실제 출생은 빠른 78이었고, 77과만 친구로 지냈다.(저는 꼬인족보만드는사람들극혐합니다 운동본부 소속.)
제가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가운데 뒤에서 손에 1000원짜리 들고 "회비 내!!!"라고 절규하고 있는 게 저(me). 그 앞에 시선집중 곰치형, 그 앞이 시선집중 태수형.
연재물 1회 마지막에 나오는 소모임 칼럼에서, 오프모임 날을 잡고 모인다는 부분에 있는 그 날입니다. 이 날 형일이가 크라우저를 들고 나와서 발냄새, 땀냄새 공격으로 재미 좀 보던 날이었지요.
그나마 사람 비슷하게 찍힌 사진.(마이 플레이 중.)

게임매거진 1998년 11월호에 실린 시전집중 팀 소개 글.
저 글은 팀장인 곰치형 혼자 북치고 장구친 내용.(대신 내용 신뢰도 100%의 글이 됨)
당시 매거진 기자로 일하고 있던 본인이 묻고, 본인이 답하면 모양새가 이상하니 전수의 이름만 빌려서 올려놨음을 당사자에게 확인(2026년 8월)했습니다.


중요하지요. 
그리고 96 초창기에 유일한(?) 대학생 팀이어서, 다른 96 팀이 만들어지면 무조건 시집(당시에는 줄여서 이렇게 부르기도 함)과 한번 배틀을 하고(=찍먹), 그 후에 신생팀은 활동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런 의미로 산 증인이고, 저는 배틀 문화를 돈독하게 만드는데 큰 영향을 주었기에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표현에 따라 아 다르고 어 다른 건데, 무한을 허용한 게 아니고요.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난 건데, 뭘 어떻게 금지를 합니까.
대전격투 게임의 특성을 함축한 명언이 있지요.
무한의 창시자 천안팀은 우리 동네에서는 다 쓰는 거라, 남들도 다 하는 건 줄 알았다, 라고 했지요.
당시 고2? 고1?이었던 학생들이 기차 타고 올라와서 A-TEAM과 배틀을 하기도 했습니다. 96 후반에는 혼자 천안 놀러가서 1대1 밥내기 배틀을 했었는데, 레오나 무한(정확하게 무한은 아니지만. 앉아 강손 - 그랜드 세이버 반복)에 당해서 밥을 뜯긴 기억이 납니다.(이 당시에 이미 밀크쉐이크에 프렌치프라이를 먹던 먹잘알 녀석들;;)
(프리즌 브뤡)


회고 글에 나오는 금메달리스트 관우의 배틀팀 데뷔 스토리는 완전 이거지요.
(대전 감사합니다 3권의 내용)

연재 1회에 있는 투니버스 인터뷰에 찍힌 시선집중 태수형(오른)과 시선집중 양남원(왼)의 모습.
2회 대회(96)때 저는 남원이의 매츄어에 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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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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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분야도 아닌 버파에 철권으로 이야기를 뻗어가다가 망할 뻔한 글을 간신히 고삐를 틀어쥐고 마무리했네요;;;

4회부터는 킹오파 이야기만 하겠습니다.(꾸벅)


덧) 자료 조사하다 보여서... 
게임라인 1997년 9월호
(나우누리. 철권팀. 2P코인. 신의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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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우누리가 별풍선 쏘는 아프리카TV가 되면서 다 날아갔다. 

[2] 게임챔프 창간호부터 볼 수 있는 곳.

https://www.gamemeca.com/magazine/?mgz=gamechamp

[3] 당시에는 2개월 뒤의 제호를 찍어서 발행했는데, 이걸 1개월로 줄이는 과정, 잡지사들 대통합으로 이뤄낸 이야기가 게이머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한국 게임잡지 실록” 연재로 실렸다. 이 실록만 모아서 전자책으로 나와도 좋을 텐데.

https://x.com/krucef/status/1293511045374291974  



TMI: 영화 반칙왕. 송강호가 프로레슬링 체육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망설이는 장면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교동 오락실. 97 때 제 아지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