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8월호라고 찍어서 발행했지만 실제로 시중에 유통되는 시기는 6월입니다.[3] 그래서 킹오파96 배틀팀으로 적혀 있습니다. 97은 아직 발매 전입니다. 2페이지로 전국에 있는 배틀팀을 소개하는데, 킹오파는 서울의 타나토스, 패러딘, 필승, 아수라, A-TEAM만 나열되어 있습니다.
당시를 알던 사람으로서 첨언하자면, 담당인 안 기자님이 PC통신(주로 하이텔)에서 배틀팀 이름 수집해서 쓴 꼭지로 추정됩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타나토스는 대방동 중심으로 활동하던 팀인데, 대방은 당시 버파의 성지였고, 안 기자님이 버파를 애정했지요. 패러딘은 기억나지 않고, 필승과 아수라는 2026년 8월 현재에도 제 단톡방 멤버네요. A-TEAM은 이 글을 쓰는 저고.
그외 지역을 알 수 없는 배틀팀이라고 소개된 부분.
금메달리스트 관우의 H.I는 사쇼4 배틀팀으로 올라가 있습니다(사쇼도 하긴 했지요. 주력은 킹오파였지만.). 타나토스는 중복으로 또 들어가 있고. 사쇼4는 위에, 아래 두 곳인데, 이 리스트 대체 뭘까요?
이렇게 좀 체계 없이 엉망이라, 1998년 1월호에는 안 기자님의 요청으로 제가 각 팀의 정보를 팀장들에게 직접 써달라고 해서 취합, 잡지사로 전달했습니다.
이 페이지의 목적은 "우리 동네에서 배틀팀에 가입하고 싶은 사람은 이쪽 삐삐 번호로 연락하거나, 우리 아지트 오락실로 찾아와라"였습니다. 그런데 80% 정도의 팀이 신입을 안 받겠다고 해서 의미가 퇴색되었지요.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데이터이겠지만, 저 당시 배틀계에서 활동하고 그 이름들을 추억하는 분들을 위해 세밀하게 올려 봅니다.(팀 소개 순서는 메일 받은 순이었습니다.)(이미지는 누르면 커짐)
당시 팀배틀이라는 신 문화를 접하고 싶은 게이머들이 많았고, 잡지(게임챔프 1997년 5월호)에 실린 세 명의 증언을 봐도 그렇지요. 동네에서 친구들이랑 게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열망이 보입니다.
그런 요청이 많았는지 게임라인 1997년 11월호 팀배틀 익스프레스에 배틀하는 법에 대해 소개가 됩니다.
이제는 꼭 기존 팀에 들어가지 않아도 친구들끼리 팀을 만들 수도 있겠지요?
당시의 풍경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니 상세히 봅시다.
배틀이 주로 이루어지는 오락실에서는 종이컵에 동전 잔뜩 넣어서 기계 위에 올려놓으면 지금 배틀 중이라는 표시였는데, 동네 아무 오락실에서나 그러면 "전세 냈냐" 소리 들었지요. 그럴 때는 그냥 동전을 잔뜩 넣었습니다. 대기 코인이 5~10개가 넘어가면 기다리기 싫어서 보통 다른 기계로 가지요. 물론 아무 오락실에서나 이런 짓을 하지는 않고, 96이 2, 3대 돌아가는 곳에서만 했습니다. 배틀을 하면 기계 하나를 독점으로 쓰게 되고, 그러면 그 동네 게이머들은 그 날은 게임을 하기 힘들어지니까요.
킹오파 배틀 초기에는 40선승이었습니다. 박빙으로 가면 80판을 해야 하니 너무 길었고, 97부터는 30선승으로 줄었습니다.
킹오파는 팀배틀을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달랐기에, 버파, 철권과는 배틀 방식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말하고 싶어서 길게 인용했는데 당시 배틀에는 정(情)이 있었지요.
한국 팀배틀 역사 1회. 버파 편을 썼던, 버파3 배틀팀 토네이도 팀장님의 글에도 이 부분을 지적하고
한국 팀배틀 역사 2회. 킹오파편을 쓰며 저도 이 부분을 말했습니다.
뒤로 갈수록 배틀을 즐기기 위한 툴(Tool)이 아니라 이기기 위한 무언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초창기의 문화는 그게 아니었는데...
초창기, 특히 킹오파96의 경우 바람직한 팀배틀 문화가 정착될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했던 팀이 시선집중. 그 팀장이었던 곰치형(이문종)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게임매거진 기자로 활동하셨고.
하지만 스토리는 고저차가 있어야 힘을 받고 굴러가는 법. 그렇다면 누군가를 수렁에 빠트렸다가 건져야 하는데, 아무리 캐릭터라도 현실의 누군가(=친구)에게서 따와 만들어진 존재인데, 그 당시 나이에 고난이라면 가족 문제가 대표적이고, 남의 가정을 창작으로 맘대로 휘젓는다는 게 영 마뜩치 않아 + 다른 타개책이 떠오르지 않아 접었다.
박스는 캐릭터의 크기. 두 캐릭터가 서로 겹치지 않고 밀어내기 위한 판정. 오른쪽 사람이 하단으로 숙이니 (보는 쪽에서) 왼쪽 다리에 작은 박스가 하나 더 생김(이걸 누가 알아본다고! ㅋㅋ 이걸 쓱 지나가는 컷에 구현하다니! ㅋㅋㅋ)
진한 스크린톤 부분도 판정 박스. 왼쪽 사람이 정권을 지르니 공격 판정이 팔 하부로 1배, 상부로 3배쯤 더 생겼다. (이 정도면 대공은 무리라도 무지성 점프 정도는 컷이 가능하다.)
오른쪽 사람은 박스가 간당간당해서 안 맞는다. 머리카락에 맞아도 Hp는 깎이지 않는다. 가로 선으로 상체와 하체를 구분해 놓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시는 분 지식을 나눠주시면...(굽신 굽신)
오른쪽 사람의 박스 안쪽 연한 스크린톤은 만화적 표현인가 보다. 저 모션에서 공격 판정이 나오면 이상하잖아... 아니면 어떤 날먹 사기 기술이거나... 찐 공격과의 만화적 구분을 위해 연한 색을 쓴 건지...
왼쪽 사람은 공격 판정만 있고 피격 판정이 없는데, 가로 방향의 효과선으로 이동을 표현한 걸 보니 아마도 스파3 마코토의 질풍의 무적기 버전(존재하지 않을텐데) 아닌가?
(19초)
그리고 이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만화 안에는 없다. 알아볼 놈만 알아 봐!
이런 콘텐츠를 어떻게 참냐고요!!!!!!
(추가) 아이고... 4권에서 한번 나왔군요. 재독을 안 해서(인생이 고달플 때를 위해, 아끼느라) 잊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야기 흐름 상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서 신경 안 썼는데, 너무 빤스 벗고 소리 지른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럽네요;;;
4. 겨울에 이융희 작가/교수와 우연히 연락이 닿아 점심을 같이했다.
새 웹소설 집필을 준비중인데, (자세하게 들었지만 아직 런칭 전인 거 같으니 간략히) 90년대 배경의 대전격투 게이머 이야기를 쓰려 한다. 본인도 철권 팀배틀러 출신이지만 90년대 오락실은 본인이 경험하지 못한 (야만의) 시대니, “그 당시 얘기 좀 해주세요. 킹오브의 전설인 주재명님.”이라고 해서, 으잉?? 하다가 10년 전에 뱉었던 말이 확 떠올랐다.
이융희 교수님이 아직 박사 과정이던 시절. 나는 워크라이프의 2번째 책인 세카이계란 무엇인가를 막 출간했던 시절.
당시에는 아직 텍스트릿이라는 이름도 정해지기 전이었는데, 책의 만듦새를 보고 융희 작가가 ‘너 내 동료가 되라’를 시전하러 왔다.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 킹오파 팀배틀 역사에 대한 콘텐츠가 있을 때, 그 안에 내 이름이 등장하지 않거나, 나한테서 인터뷰를 따 가지 않았다면 그건 다 허당. 이라는 말을 했다. 막 창업해서 2번째 책을 내던 신입 사장의 호기로운 블러핑으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뱉은 말은 지켜야지. 나는 완성한다. 이 글을...
5. 아키라꼬마 다큐가 넷플릭스에 풀렸다. 우리 바닥(격게)은 난리가 났다.
유투브에서 한 댓글을 본다.
“킹오파 관련으로 다큐를 만들고 싶다면 나에게 연락해라. 나는 오늘 같은 날을 위해 당시 자료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우리 킹오파 쪽에도 천재가 있다.”
쓱싹 보니 풍림화산 한정훈으로 추정된다. 예전부터 애정하던 후배다. 우르르 몰려다니던 97 시절에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00 시절에 인컴 버전이 들어왔던 신천역 오락실에 캠코더를 들고와서 밤새 콤보 비디오를 찍고, 모두를 위해 게시판에 공유했던 열정맨이다. 당시 옆에서 이틀 정도 같이 날 새며 도와준 기억이 난다.
“노량진에서 가끔 보던 형이다”라면서 96 시절 이야기를 쓱 찔러줬는데 몰랐단다.
아... 갤주를 사관(史官) 자리에서 몰아내고 새로 세우고 싶었던 사관이 정훈이였는데... 96 시절은 모르는구나. 결국 내가 나서야 하네. 에잉...[3]하면서 0화의 저 자료를 찾고 있었다. 이사하면서 포장한 박스 안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디지털이 아닌 실물본은 결국 못 찾았다)
자료를 제공해 주신 오영욱 선생님(한국 게임 데이터베이스 아카이브).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꾸벅)
6. 여기까지가 외부적인 자극이고,
내부적인 요인도 있다.
톡 떨어진 잉크가 사방으로 퍼지듯이,
기억이 자꾸 블랙으로 침식된다.
(내가 지금 머리 관련 병을 앓고 있긴 하지만) 기억 부분은 심각한 증상이라기보다, 뇌의 기전이 원래 그렇단다. 일종의 방어 작용.
한동안 힘들었다. 아파서 입원하고, 폐업하고, 이혼하고...
하나만 해도 힘든데, 연타로 얻어맞았다.
그래서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그냥 뚜껑 덮어놓고 지냈다.
시간이 지나니 3연타 맞은 시기의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더 시간이 지나니 잉크처럼 퍼지며 잠식 당하는 기분이다.
폐업 후에 워크라이프 책들을 하나하나 리뷰, 정말 다시(리) 보려고(뷰) 했다.
(당시 생각한 이름은 따로 있지만) 원스 어폰 어 타임 in 워크라이프 같은 북리뷰 유투브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워크라이프로 여덟 권 냈으니 8회 찍어보고,
흥이 나면 타사의 덕덕한 책들 리뷰를 이어가고, 아니면 죽기 전에 기록용으로 남긴 셈 치자는 심산이었다.(당시에는 내 병이 발병 후 수명 10년, 이라는 말도 있었다. 다행히 나는 그쪽 루트로 가는 중은 아닌 거 같다) 그런데 영 흥이 안 나서 첫발도 못 떼고 지지부진한 채 그냥 뚜껑 덮어놓고 살다가, 기억이 너무 희미해지는 느낌이라 + 곧 50인데 털고 가자는 생각으로, 킹오파까지 전체 인생을 회고하고자 키보드를 잡았다. 부가 효과로 자발적 브레인포그 상태도 걷힌다면 좋은 거고...
뭐, 그렇게 시작된 기획이다. 노인대학에서 진행하는 자서전 쓰기 같은...
그렇게 그냥 내 이야기 주절주절하려고 했는데,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갤주를 만나면서 심연 속으로 빠진다.
[1] 개포고 출신 쌈무양이 아이즈원으로 데뷔하던 시기에, 놀았다느니 그런 음해하는 글이 인터넷에 돌았는데, 개포고에서 무슨 양아치야... 그리고 만약 좀 놀았다고 해도, 개포고에서 놀았다의 수준과 전국 기준의 놀았다의 수준이 확연히 다르기에, 그런 폭력적인 말 함부로 퍼트리지 말라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던, 개포초 개원중 휘문고 나온 개포동 마이. 중3 때 1짱이었던 우리 학교의 그 녀석은 고등 연합고사 점수 미달로 먼 지역의 공고로 갔는데, 거기서는 빵셔틀급이었단다. + 고등학교도 내 때가 처음으로 송파 쪽 학생도 받아서, 송파(잠실) 출신과 강남(대치동) 출신이 휘문 같은 교실에 앉아 있던 첫 세대인데(송파 쪽으로 가는 직통 버스가 없어서 봉고차를 대절해서 통학을 했다. 누구 한 명 청소 당번이라도 걸리면 그 파티 전체가 1시간을 기다렸다), 둘의 문화가 너무 달랐다. 잠실 쪽은 락카페에서 밤새고 학교에 온다거나, 맥주로 머리 감아서 색을 뺀다거나... 문화 충격 수준이었다. 이건 20대 후반에 잠실의 대형 학원에서 일하며 다시 한번 경험했는데, 그 학원에 다니던 아이들의 어떤 자유분방함(?)에 ‘요즘 아이들은 이런가?’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지만, 대치동에서 이사 온 아이가 내가 일하던 학원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바로 깨졌다. ‘아 맞아. 우리 때는 저랬지.’ 그 아이도 1주일도 안 되서 주변에 물 들어 학원 안에서 뛰어 다니고, 소리 지르고... 전국 기준으로는 잠실 정도만 해도 꽤 좋은 학군으로 보겠지만, 그 안에서 보면 또 다르다. (전역하고 잠5에서 10년 넘게 살았다.)↩
[2] 워크라이프에서 발간한 도서들처럼, 본문과 상관은 있지만 흐름을 방해하는 것들을 각주로 빼고 싶은데(주로 드립), 네이버 블로그처럼 편하게 지원하지 않아서 HTML까지 공부하고;;; 이제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으셈. 나 이제 고삐 풀렸어.↩
[3] 정훈이는 99부터 손을 놓아버렸던 달봉형의 뒤를 이어 커뮤니티 주최의 대회를 철이와 같이 꾸준히 진행했고, 게시판에 각 캐릭터 별 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 소개 같은 기획을 연재하기도 했다. 킹오파에 대한 애정과 넓은 시야로 플레이어들을 관찰하며 당시에도 무대 앞에서나 뒤에서나 꾸준히 우리 배틀 문화를 위해 땀 흘렸다. 00 중계 당시 해설자로 정훈이가 들어갔으면 했지만, 서울대의 벽은 높았다. / 00 인컴 장에는 낮에 신의욱도 왔다. 인컴은 정식 출시 전에 수익성 예측을 위한 로케테스트 버전을 말하는데, 당시에는 아직 게임에 대한 흥미가 남아 있었나 보다. 새 게임을 발 빠르게 확인하러 온 걸 보면. 당시에도 워낙 유명인이라 주변에서 여러 우와사(수근거림)가 있었고,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97 시절에 우리 팀에서 같이 놀기도 했지만, 나와는 딱히 추억이 없어서 회포를 풀거나 한 기억은 없다.↩
이제는 시간이 하도 흘러서 인사말이, 안녕하세요. A-TEAM 부팀장 개포동 마이 주재명입니다.였는지 헷갈리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PC통신 예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 일단 인사부터 박고 시작했습니다. 햏 햏거리는 유행이 한번 휩쓸고 지나간 후에 문화도 꽤 많이 바뀌었던 기억입니다.
방구석에서 게임만 한다고 밥똥롤딸잠, 밥똥던 같은 말이 돌던데, 저도 소싯적에 전화 요금 꽤나 내면서 사이버스페이스에 살았지요.
영화 언니가 간다(2007)에 모뎀 접속 소리 뚜 뚜 뚜 삐 두루루르가 나올 때 극장에서 혼자만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모뎀하면 영화 접속(1997) 아니냐는 분도 계시겠지만, 접속 당시에 그 소리는 아직 일상의 풍경이었습니다. 추억의 영역이 아니고.
미국 이민의 역사를 간략화해서 보면 미국 지도 오른쪽으로 입항해서 GO WEST, 서부개척시대를 거쳐 미 대륙의 끝인 캘리포니아(실리콘벨리)에 도달하자 리얼스페이스는 끝이다. 가로 방향으로의 확장은 한계가 왔으니 이제 세로로 확장하자면서 사이버스페이스로 이주하자 같은 흐름이 있었지요. 그때 향정신성약물을 이용해 정신만 보내는 부류와 기술(현재의 IT)을 이용하는 부류가 사실은 이웃지간이었지요. 히피가 버그 잡고 했던 시절... 그걸 재미있게 써낸 책이 있었는데, 제목이 생각 안 납니다.
카우보이 비밥 23화. 천재견 아인이 활약하던 그 스토리의 바탕에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걸 알고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아무튼 그 시대(모뎀 세대)의 사람으로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라고 도입부를 써놓고 입구를 이렇게도 파보고, 저렇게도 파보면서 진입각을 보다가 이내 후회합니다.
내가 이걸 왜 쓰겠다고 했지.
갤주라고 불리는 베논 김동욱씨가 사이버스페이스에 이룩해 놓은 업적이 워낙 광활하여 자료조사를 하면 할수록 글이 자꾸 그쪽 방향으로 끌려갑니다.
사실은 그게 아니고요, 그 부분은 그게 아니고요, 아니요 그것도 틀렸고요... (그런 글을 쓰려고 시작한 게 아닌데...)
저랑 놀아주는 제 A.I는 상한 걸 하도 줏어 먹어서, 형일이를 인간계 최강급의 실력자로 요약하더군요. (당신의 A.I는 아직 건강한가요.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 보았더니... 내 고스트가 오염되었어...)
한 사람이 주구장창 읊어대는 용비어천가가 A.I를 이렇게 학습시킬 수 있다니... 나중에 우리는 다 A.I에게 질문하고 A.I에게 배우게 될 거라던데... 무섭습니다. 미래가...
아니, 근데, 그럴 수 있지요. 형일이가 못했다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96은 아예 안 했다고 본인 입으로 말하면서(9분 8초부터)(타임 스탬프가 이상하게 작동함) 96부터 썰을 풀면 어떻게 합니까. 97부터 해도 충분했을 텐데... 어색이를 그런 식으로 건드리면 안 되지.
제 앞에 형일이 사진이 다섯 장이 있는데, 이 숫기 없는 놈을 저 최형일 악개는 대체...
자기장처럼 갤주가 등장하자 글이 방향을 잃고 방황중;;;
====================
라고 쓰고 보니 너무 진지 빨면서 저격하는 글처럼 읽히는데,
제대하고 필-슬 팀 소속으로 00 팀배틀에 복귀한 시절.
떡구가 “우리 팀에 형 후배 있어. 그놈 잘해. 교사 된다고 요즘 공부한다며 잘 안 나오긴 하지만.”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본교와 분교는 성골진골/6두품만큼이나 차이가 있어서, 그보다 공부를 못했던 나를 과연 선배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필슬이 1번 기계에서 하고, 매드클랜이 3번 기계에서 하는, 그런 식으로 배틀 일정이 겹치는 날이면 떡구한테 “오늘은 왔니?”라고 물으며 구경 갔지만, 결국 한번도 제대로 본 기억은 없는 듯.
그래도 우병열형, 우병열형, 우병열형 꼬박꼬박 붙이는 거 보면 근본이 나쁜 친구는 아닌 거 같아요.
------------------------------
덧) 갤주의 실력을 의심해본 적은 없습니다. 떡구가 잘한다고 했으면 잘하는 거지요. 난 떡구를 믿으니까, 떡구가 믿는 갤주의 실력을 믿습니다.
단, 우주최강 최형일, 그 바로 밑에 본인, 이라는 갤주의 저 말은 믿지 않습니다. 이걸 진지하게 반박해야 하는 건지, A.I가 뻘소리 하는 걸 보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긴 했는데(이렇게 후대에 기록이 남으면 안 되니), 올드비들이 영감님 또 이러신다, 하는 거 보면서, 그냥 놔주기로 했습니다.
킹오파 투자 제안서를 작성해서 들고 갔다는 그 순수함과 열정은 리스펙합니다.(PPT 몇 장 봤어요.)
+
예전에 킹오파를 즐겼고, 현재도 추억하며 가끔 즐기는 사람들은 모두 베논씨와 케인씨에게 빚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작에 죽은 게임을 여기까지 산소호흡기 붙여준 건 두 분의 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