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걸 왜 쓰겠다고 했더라??
가장 큰 산인 갤주를 넘었으니 이제 본론으로.
나는 이 주제, 옛날 킹오파 이야기를 의무감에 하고 있다.
계속 쓰다 보면 흥이 나고 재미도 붙겠지만, 현재는 0화를 섣불리 올린 걸 후회하고 있다. 사전제작 드라마처럼 싹 쓰고 나서 잘라서 올릴 걸... 그러면 좀 쓰다 Run 칠 수도 있었는데;;;
소실된 줄 알았던 0화의 딱 그 자료를 제공 받고 너무 기뻐서, 내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선언적으로 확 올려버렸다.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은 여러 차례 있었다.
1. 장강명의 소설 “열광금지 에바로드”를 읽고,
나에게도 마법의 가을이 있었어, 라며 그 시절 A-TEAM 이야기를 써보려 했다.
하지만 스토리는 고저차가 있어야 힘을 받고 굴러가는 법. 그렇다면 누군가를 수렁에 빠트렸다가 건져야 하는데, 아무리 캐릭터라도 현실의 누군가(=친구)에게서 따와 만들어진 존재인데, 그 당시 나이에 고난이라면 가족 문제가 대표적이고, 남의 가정을 창작으로 맘대로 휘젓는다는 게 영 마뜩치 않아 + 다른 타개책이 떠오르지 않아 접었다.
(에바로드는 다큐고, 열광금지 에바로드 소설은 다큐를 바탕으로 한 창작이다.)
2. 그러다 관우가 금메달을 따고, 어머니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흘릴 때 같이 울었던 사람으로서,
당시 게시판에 쏟아졌던 늙은이들의 오락실 체험담처럼 뭔가를 쓰자...라는 다짐은 게으름에 묻혀 차일피일...
3. 이번에는 만화가 옆구리를 콕 콕 찌른다.
대전 감사합니다.가 너무 재밌다.
회차 단위도, 페이지 단위도 아닌, 칸 단위로 낄낄거리면서 읽었다. 공방 심리가 잘 표현되어 있어서, 한때 찐하게 몸 담았던 사람으로서 애정할 수밖에 없다.
애니메이션 버전도 나오고 일드도 나오니 아직 안 보신 분은 꼭 보시길.
물론 난 만화판을 추천한다.
https://ridibooks.com/books/1690000936?_rdt_sid=BookDetailHomeAuthorProfile&_rdt_idx=0
1권 미리보기 가능하니 츄라이 츄라이. (수정)(1권 통으로 미리보기 보여줬는데, 기간이 끝나서 일부만 보여주네요)
4. 겨울에 이융희 작가/교수와 연락이 닿아 점심을 같이했다.
새 웹소설을 준비중인데, (자세하게 들었지만 아직 런칭 전인 거 같으니 간략히) 90년대 배경의 대전격투 게이머 이야기를 쓰려 한다. 본인도 철권 팀배틀러 출신이지만 90년대 오락실은 본인이 경험하지 못한 시대니, “그 당시 얘기 좀 해주세요. 킹오브의 전설인 주재명님.”이라고 해서, 으잉?? 하다가 10년 전에 뱉었던 말이 확 떠올랐다.
이융희 교수님이 아직 박사 과정이던 시절. 나는 워크라이프의 2번째 책인 세카이계란 무엇인가를 막 출간했던 시절.
당시에는 아직 텍스트릿이라는 이름도 정해지기 전이었는데, 책의 만듦새를 보고 융희 작가가 ‘너 내 동료가 되라’를 시전하러 왔다.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 킹오파 팀배틀 역사에 대한 콘텐츠가 있을 때, 그 안에 내 이름이 등장하지 않거나, 나한테서 인터뷰를 따 가지 않았다면 그건 다 허당. 이라는 말을 했다. 막 창업해서 2번째 책을 내던 신입 사장의 호기로운 블러핑으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뱉은 말은 지켜야지. 나는 완성한다. 이 글을...
5. 아키라꼬마 다큐가 넷플릭스에 풀렸다. 우리 바닥(격게)은 난리가 났다.
유투브에서 한 댓글을 본다.
“킹오파 관련으로 다큐를 만들고 싶다면 나에게 연락해라. 나는 오늘 같은 날을 위해 당시 자료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우리 킹오파 쪽에도 천재가 있다.”
쓱싹 보니 풍림화산 한정훈으로 추정된다. 예전부터 애정하던 후배다. 우르르 몰려다니던 97 시절에는 뉴비가 워낙 많아서 잘 기억나지 않지만, 00 시절에 인컴 버전이 들어왔던 신천역 오락실에 캠코더를 들고와서 밤새 콤보 비디오를 찍고, 모두를 위해 게시판에 공유했던 열정맨이다. 당시 옆에서 이틀 정도 같이 날 새며 도와준 기억이 난다.
“노량진에서 가끔 보던 형이다”라면서 96 시절 이야기를 쓱 찔러줬는데 몰랐단다.
아... 갤주를 사관(史官) 자리에서 몰아내고 새로 세우고 싶었던 사관이 정훈이였는데... 96 시절은 모르는구나. 결국 내가 나서야 하네. 에잉...[3]하면서 0화의 저 자료를 찾고 있었다. 이사하면서 포장한 박스 안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디지털이 아닌 실물본은 결국 못 찾았다)
자료를 제공해 주신 오영욱 선생님(한국 게임 데이터베이스 아카이브).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꾸벅)
6. 여기까지가 외부적인 자극이고,
내부적인 요인도 있다.
톡 떨어진 잉크가 사방으로 퍼지듯이,
기억이 자꾸 블랙으로 침식된다.
(내가 지금 머리 관련 병을 앓고 있긴 하지만) 기억 부분은 심각한 증상이라기보다, 뇌의 기전이 원래 그렇단다. 일종의 방어 작용.
한동안 힘들었다. 아파서 입원하고, 폐업하고, 이혼하고... 하나만 해도 힘든데, 연타로 얻어맞았다.
그래서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속에서 썩든가 말든가 그냥 뚜껑 덮어놓고 지냈다. 시간이 지나니 3연타 맞은 시기의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더 시간이 지나니 잉크처럼 퍼지며 잠식 당하는 기분이다.
폐업 후에 워크라이프 책들을 하나하나 리뷰, 정말 다시(리) 보려고(뷰) 했다.
(당시 생각한 이름은 따로 있지만) 원스 어폰 어 타임 in 워크라이프 같은 북리뷰 유투브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워크라이프로 여덟 권 냈으니 8회 찍어보고, 흥이 나면 타사의 덕덕한 책들 리뷰를 이어가고, 아니면 죽기 전에 기록용으로 남긴 셈 치자는 심산이었다.(당시에는 내 병이 발병 후 수명 10년, 이라는 말도 있었다. 다행히 나는 그쪽 루트로 가는 중은 아닌 거 같다) 그런데 영 흥이 안 나서 첫발도 못 떼고 지지부진한 채 그냥 뚜껑 덮어놓고 살다가, 기억이 너무 희미해지는 느낌이라 + 곧 50인데 털고 가자는 생각으로, 킹오파까지 전체 인생을 회고하고자 키보드를 잡았다. 부가 효과로 브레인포그 상태도 걷힌다면 좋은 거고...
뭐, 그렇게 시작된 기획이다. 노인 대학에서 진행하는 자서전 쓰기 같은...
그렇게 그냥 내 이야기 주절주절하려고 했는데,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갤주를 만나면서 심연 속으로 빠진다.
왜 다시 결론이 갤주야!
하여간 마성의 남자...
3회부터는 이제
덧) 무적기의 흉악함.(1분 4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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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포고 출신 쌈무양이 데뷔하던 시기에, 놀았다느니 그런 음해하는 글이 인터넷에 돌았는데, 개포고에서 무슨 양아치야... 그리고 만약 좀 놀았다고 해도, 개포고에서 놀았다의 수준과 전국 기준의 놀았다의 수준이 확연히 다르기에, 그런 폭력적인 말 함부로 퍼트리지 말라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던, 개포동 마이 재명. 중3 때 1짱이었던 우리 학교의 그 녀석은 고등 연합고사 점수 미달로 먼 지역의 공고로 갔는데, 거기서는 빵셔틀급이었단다. + 고등학교도 내 때가 처음으로 송파 쪽 학생도 받아서, 송파(잠실) 출신과 강남(대치동) 출신이 휘문의 같은 교실에 앉아 있던 첫 세대인데(송파 쪽으로 가는 직통 버스가 없어서 봉고차를 대절해서 통학을 했다. 누구 한 명 청소 당번이라도 걸리면 그 파티 전체가 1시간을 기다렸다), 둘의 문화가 너무 달랐다. 잠실 쪽은 락카페에서 밤새고 학교에 온다거나, 맥주로 머리 감아서 색을 뺀다거나... 문화 충격 수준이었다. 이건 20대 후반에 잠실의 대형 학원에서 일하며 다시 한번 경험했는데, 그 학원에 다니던 아이들의 어떤 자유분방함(?)에 ‘요즘 아이들은 이런가?’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지만, 대치동에서 이사 온 아이가 내가 일하던 학원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바로 깨졌다. ‘아 맞아. 우리 때는 저랬지.’ 그 아이도 1주일도 안 되서 주변에 물 들어 학원 안에서 뛰어 다니고, 소리 지르고... 전국 기준으로는 잠실 정도만 해도 좋은 학군으로 보지만, 그 안에서 보면 또 다르다.↩
[2] 워크라이프에서 발간한 도서들처럼, 본문과 상관은 있지만 흐름을 방해하는 것들을 각주로 빼고 싶은데(주로 드립), 네이버 블로그처럼 편하게 지원하지 않아서 HTML까지 찾아보고;;; 이제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으셈. ↩
[3] 정훈이는 99부터 손을 놓아버렸던 달봉형의 뒤를 이어 커뮤니티 주최의 대회를 철이와 같이 꾸준히 진행했고, 게시판에 각 캐릭터 별 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 소개 같은 기획을 연재하기도 했다. 킹오파에 대한 애정과 넓은 시야로 플레이어들을 관찰하며 당시에도 무대 앞에서나 뒤에서나 꾸준히 우리 배틀 문화를 위해 땀 흘렸다. 00 중계 당시 해설자로 정훈이가 들어갔으면 했지만, 서울대의 벽은 높았다. / 00 인컴 장에는 낮에 신의욱도 왔다. 인컴은 정식 출시 전에 수익성 예측을 위한 로케테스트 버전을 말하는데, 당시에는 아직 게임에 대한 흥미가 남아 있었나 보다. 새 게임을 발 빠르게 확인하러 온 걸 보면. 당시에도 워낙 유명인이라 주변에서 여러 우와사(수근거림)가 있었고,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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