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0일 목요일

원스 어폰 어 타임 in 킹오파 (6회)(끝?)

사람들도 그다지 관심 없을 듯하고, 어딘가 낑겨 넣기도 애매했던 짜투리 글들


나는 게임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78년생이면서 처음 간 오락실이 중1 때로 입문이 꽤 늦은 편이었다. 당시 인기였던 스파2(댓시도 아니고 8인만 선택 가능한 투, 동캐 대전도 불가해서 류와 캔이 존재했던 투)의 캐릭터 ‘춘리’의 공중잡기에 빠져, 모든 캐릭터의 필살기를 춘리의 공중잡기로 던져봤다(블랑카의 롤링어택, 혼다의 슈퍼박치기, 장군님의 사이코프레셔 등등)는 수준의 자랑거리밖에 없다.

대전은 3~4번 이기면 지는 고만고만한 수준이었고...

그러다 휘문 고3 때, 킹오파96이 나온다. 시리즈 처음으로 소점프 중점프 대점프가 구분되었고, 초기에 적응을 마친 나는 학교가 밀집해 있어서 당시 격전지였던 개포 1단지 새명랑 오락실에서 17연승을 거둔다.

TMI: 새명랑 오락실 주인 아저씨는 전국 유기장 협회 강남지부 지부장(?) 뭐 그런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게임 모니터의 영상이 잘리지 않게 칼각을 맞추는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나중 일이긴 하지만) 부리키 원 같은 해괴한 게임도 여럿 있었다.

새명랑을 추억하는 글 링크

3회 글에도 있듯이 당시는 일본에서 시작된 팀배틀이라는 문화가 핫했던 시기고, 친구 백자ㅇ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했으나 녀석이 거절. 나는 PC통신에 글을 쓴다.

“킹오파 팀 만들어서 같이 놀 사람 모집합니다. 개포동 남강 오락실에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있습니다.”

당시 PC통신은 지금의 인터넷처럼 누구나 하는 문화는 아니었는데, 우연히도 중동 고3 심장 심상ㅎ이 그 글을 봤고, 자기 친구들에게 “너희 요즘 킹오파 하지? 우리 동네에 이런 놈이 있다던데”하면서 토스했다.

상준이(이후 A-TEAM 최번개)가 남강에서 나를 픽업해서 챔피언으로 데려갔고(상준이는 이런 걸 잘했다. 큰 키에서 나오는 위압감과, 특유의 서글서글함으로 우리 팀에서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다. 97 때 아키라꼬마도 상준이가 컨택해서 데리고 왔다), 그렇게 챔피언에서 어색이(A-TEAM 장거한)와 영기(A-TEAM 김갑환)를 만났다.

전수의 등장은 언제쯤이었을까. 전수의 학교와 집은 일직선상에 있었고, 당시 우리가 모이던 게임장에 오려면 굳이 집에서 다시 나와야 하는 노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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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이름 A-TEAM은 내 멋대로 바꾼 거다.

영기 버전의 A-TEAM 탄생 설화는 이렇다. 중동 고3 친구 셋이 동네에서 팀을 만들어서 놀다가 나중에 재명과 전수가 합류했다.

내가 기억하는 팩트는, 셋이 놀다가 심장을 통해 나를 만났고, 어느 날 팀 이름 정했다면서 ‘에이특공대’라고 알려왔다. 듣자마자 ‘특별히 공부도 못하면서 대가리만 큰 아이’가 생각난 나는 유치하다면서 할거면 A-TEAM으로 하라고 했고, 그 날 집에 가서 PC통신에 바로 올려버렸다.

나는 당시에 A-TEAM B-TEAM C-TEAM 같은 느낌으로 말한 거였고, 미드 에이특공대를 본 적이 없어서 원래 제목이 A-TEAM인 것을 몰랐다.(어쩐지 이 친구들 반발이 적더라니;;;)

2010년에 나온 영화 버전 에이특공대를 보고서야 당시 우리 팀 이름의 정체를 알았다.

미드 에이팀 유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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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회(96) 때, 팀배틀 부분을 신설했는데, 참가하고 싶지만 3명 모으는 게 힘들다는 사람이 많아서, 그럼 2인팀도 가능이라고 조건을 완화했다.(기존의 팀과는 배틀을 이미 활발하게 하고 있는데, 신규 팀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굳이 대회에 팀배틀 부분을 신설할 이유도 없다.) 여기에 한국팀 3인방(어색, 영기, 상준)이 에이특공대로 등록해서 나갔고, 나랑 전수가 A-TEAM으로 나갔다.

2차 대회 팀배틀 부분 최종 결과는 1위 설풍, 2위 에이특공대, 3위 아수라였다.

나랑 전수의 A-TEAM은 2회전인가 3회전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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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이가 A-TEAM의 팀장인 이유는 실력 순으로 뽑아서 그렇다.

영기가 기억 못하는 이유는 패배의 충격이 너무 컸나 보다.

팀을 만들고 개포동을 벗어난 외부 활동도 꽤 했지만 누가 팀장이고, 이런 건 아직 정하지 않았다. 1996년의 대한민국은 실력 지상주의가 만연한 시대였고, 1회 대회를 열면서 이긴 사람이 팀장이라고 선언했다. 당시 영기는 어색이의 장거한 스승이기도 했다. (영기는 이기는 걸 잘했다. 체력 게이지 시작이 100이라면, 99대 98로 이겨도, 어쨌든 이겼잖아~가 가능한 마인드였다.)

게임라인 기록에 어색이의 3대0 스트레이트 희생자 명단에 영기가 없는데, 그 명단은 2일차인 본선의 명단이고, 영기는 1일차에 어색이랑 붙어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당시 집에 제사였나… 일이 있어서 초기에 팀장 결정전을 하고 이탈했다. 내가 승패 기록지를 들고 영기 옆에서 직관했고, 영기가 이기리라 예상하고 있었기에 기억하고 있다.

2차 대회 개인전에서 1등이 어색, 2등이 영기, 3등이 조영욱형일 정도의 실력자인데, 1차 대회 본선 명단에 영기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부팀장인 건 대회 2등인 것보다는, 배틀 잡고 후기 올리고 등등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했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때도 반장보다 부반장이 담임 심부름을 많이 하지 않던가. 중반에 ‘니가 왜 부팀장이야’라는 말이 나왔고, ‘응 그럼 앞으로 잡다한 일 니가 해’ 한마디에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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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대회 때 조꾸루, 조영욱형을 처음 만났다. 친구들한테 쿄를 귀신 같이 하는 형이라고 소개 받고 1 VS 1로 세팅된 기계에 둘이 앉았다.(킹오파는 3 VS 3이 기본 세팅이지만, 설정에서 바꾸면 스파처럼 한 캐릭터만 선택해서 플레이하는 1 VS 1도 가능하다. 오락실 아저씨가 회전율 높인다고 그렇게 설정한 기계도 있었다.) 7판 정도를 내리 이겼다. 간당간당하게. 몇 도트 차이로. 7 대 0. (못 믿겠지? 강요는 안 한다)

무릎 선수의 유명한 말이 있다. OK. 다운로드 완료.

그후로 2002까지 단 한판도 못 이겼다. 영욱이형한테.

담당일진이라는 말은 나쁜 말이니 공한증 정도로 하자. 이제는 쿄만 봐도 방어력 디버프 걸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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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찬용이형이라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관우 입장에서 형일텐데, 나한테도 형인지, 나랑 동갑인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H.I야 만날 자기네가 최강이라는 애들이니, 내 마이보다 찬용이형 마이가 더 잘한다는 건 그 동생들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인데, 뭔 본 적도 없는 사람과 어떻게 맞짱을 떴는지는 내가 다 궁금하다. (H.I 팀원 셋이 찍은 사진이 있는데, 소거법으로 이 나머지 한 명이 찬용이형이겠거니 한다. 본 적도 없고 얼굴을 모르니 맞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밑에 글에, 적어도 두 번은 배틀을 했다면서 왜 못 봤냐고 물으면, 당시 H.I는 둘이 배틀을 다니는 일이 빈번했다. 증언도 잔뜩 있다. 요즘 기준으로 본다면 붙을 것도 없이 실격패겠지만, 당시는 1주일 기다려서, 1시간 이상 지하철 타고 모여서, 기준 미달로 부전승 같은 걸 따지는 것보다는, 모여서 노는 게 더 중요했다.

96 팀배틀 리그 전적은 1년 통합 A-TEAM 2패. (승은 기록하지 않아서 모르겠다.)

설풍에게 1패, H.I에게 1패.

상대 전적은 A-TEAM 2 : 1 설풍 / A-TEAM 2 : 1 H.I

설풍이 1년 통합 6패.

H.I도 1년 통합 6패.

여기까지가 게임라인에 기고하던 당시의 기록이고,

제대한 후, 저런 기록을 남겼던 사람으로서 궁금해서, 나우누리가 아직 살아 있던 시절에 게시판 글을 하나씩 추적해서 본 결과.

설풍과 H.I가 마지막으로 자웅을 가렸는데, 그 배틀에서 설풍이 이겼다는 기록을 확인했다. 그래서 96 시절 2위 팀은 설풍이 맞다.

H.I는 A-TEAM과의 1차전 때 진 것도 자기들이 이겼다고 게시판에 올리던, 사탄 들린 아이들이었으니, 이것도 인정 안할지도.

왜 진 걸 이겼다고 거짓말 하냐 했더니, 봐준거다 다음에는 이긴다는 말이었다고 해서 2차전도 이겼더니 컨디션이 안 좋았다, 그런 말만 하는, 오프라인에서는 꾸벅 인사하면서 키보드만 잡으면 사탄 들린 말을 하던 그 녀석들도, 나도 이제는 40보다는 50이 가까운 아재입니다요.




덧. 어디 넣기 애매했던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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